지극히 개인적인 101

소비를 주저해야겠다.

요즘은 편하게 쓰는 것들에 대해, 내가 누리는 이 편리함이 당연한 걸까, 이렇게 막 써도 되는 걸까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지금 내가 이렇게 편리함을 누리면, 이 편리함의 댓가를 내가 치러야 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언젠가 또는 미래의 누군가가 또는 이 지구상의 어떤 다른 누군가가 대신 치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맞겠지. 죄책감... 까지는 아니지만 (원래도 막 펑펑 써대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덜 쓰도록, 소비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빚으로 굴러간다고 했던가? 미래가치를 보고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는 구조라고 들은 것 같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생산을 하고, 빚을 갚고 또 빚을 내고 생산을 한다고 하더라. 이렇게 미래 가..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니까 오늘 하루도 서로를 아껴줘야지.

나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완전 깡촌에서 살았었다. 과자라도 하나 사먹으려고 조그만 구멍가게까지 가려면, 마냥 걸어서 20분을 가야할 정도로 시골동네. 더 큰 문제는 과자라는 걸 사 먹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외진 시골이었다는 거. 그 시골에서도, 내가 어릴 때 살던 그 집은 그 동네에서는 나름 괜찮은 집이었다. 방이 세 개 였고 집 안에 큰 마당이 있었고 마당 앞엔 밭과 우물, 그 동네를 대표하는 감나무가 있는 그럭저럭 큰 집 이었다. 나는 우리(할머니) 집이 그 동네 제일 가는 부잣집일 줄 알았다. 사실, 어렴풋하게나마 알고는 있었다. 그 동네 제일 가는 부잣집은, 동네 어귀에 소를 많이 키우던 홍씨 아저씨네라는 걸. 하지만, 마당 바로 앞에 커다란 산이 바로 보이는, 산이 더 가까운 우..

시간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자원이자 제한이다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드라마 못 보고 지나간 게 아쉬운 영화 매일 쏟아지는 기사도 놓칠 수 없고 운동은 매일 두 시간 안 되면,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가족과도 함께 어울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친구나 친지와도 교류를 유지해야 하고 시간이 문제일까? 아니야, 시간이 문제가 아니야. 선택과 집중이 문제야. 나는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거 그 어떤 것도 하루 24시간, 일주일 동안 다 할 수가 없어. 뭘 하느냐, 어디에 내 시간을 쓰느냐가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게 무엇에는 내 시간을 쓰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해. 나는 충분히 쉬기 위해 이미, 게임을 안 하고 있고. 만족해. 그래... 시간을 잘 조율해야겠다.

그 때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지만. 자꾸 해보니 덜 어렵기는 하다.

입금이 늦어질 때, 입금 내용을 확인해 달라는 말을 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거의 하루 이틀을 끙끙 앓았다. 그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진땀이 났다. 아마도 나이를 먹은 것도 있겠지만, "입금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 연락을 드립니다." 라는 말을 또는 문자 보내기를 몇 번인가 했더니, 이젠 그렇게 어렵지가 않다. (여전히 이 말을 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다) 시작, 처음하는 일은 어렵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고 허둥지둥하고, 난감하고, 하기 싫고 그런데 그냥 일단 저지르고, 그렇게 어려운 채로 몇 번 하다보면, 무뎌지긴 한다. 필요한 거면, 그냥 하자.

우리집 어린이들의 음악 듣는 취향

부모의 음악 취향이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일부러 아이들에게 내가 듣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잡다하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 어린이들은 정말 음악을 이것저것 다 듣는데 냉정과 열정사이 오케스트라를 들으면서,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하는 어린이가 됐다. 참 신기한게, 딱히 좋아하지 않는 노래까지 이것저것 들려줘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취향이 그냥 상당히 비슷한 것 같다, 가끔 아이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소개받기도 하는데, 내 취향이기도 하다는. 이런 건 참 신기하다. 뭐, 물론 아이들과 (드라마, 만화, 개그, 먹는 거 등등) 취향이 아주 다른 경우도 매우 많기는 하다.

아빠에 대한 회상

최근 돌아가신 분들의 사후 처리에 대한 책 후기가 탐라에 돌아다녔다. (죽은 자의 집청소,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한다) 어제 잠을 설치다 타임라인에거 봤던 그 책에 대한 내용이 갑자기 그 생각이 났고, 어쩌다 보니 아빠 생각이 나서, 조금 울었다. 아빠는, 무슨 드라마 소재로 나올 법한 희귀한 불치병에 걸렸고, 진단 받고 반년을 사셨는데 그나마도 2/3 정도는 입원해 계셨었다. 돌아가신 건, 크리스마스를 지난 다음 달이었다. 아빠는 크리스 마스 이브에 입원해서 퇴원하지 못했다. 역병이 돌기 거의 직전이었다. 새벽 4시 좀 넘어서 임종을 맞았는데, 산소포화도가 서서히 떨어져가는 걸 가족 모두 지켜봤다.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셨던터라 당시 계시던 간호사선생님들이 다 같이 울었다. 그게 좀 오래 기억에 남았고..

자기자신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어릴 때는 내 생활이나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전시하고 싶었다. 싸이월드 같은 SNS는 “나”의 일부를 부분적으로(선택적으로) 전시하기에 좋은 창구였다. 지금은, 할 만큼 해봤다 싶어서 그런 것도 있고, 귀찮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생활은 드러낸 만큼, 생각지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게 무서워서 사생활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기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건, 어떤 면으로는 꽤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활성화되는 뇌부위가 설탕을 먹을 때나 마약을 했을 때 활성화 되는 뇌 부위가 같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교 연구 결과라고 하고, 말센스라는 책에 이 내용이 나온다고 해서 책을 일단 사뒀는데, 아직 읽지는 않아서 정확하게 어느 ..

행복의 역설 2

사는 건 어차피 불행하다고, 불행이 인생의 기본값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내 황망해 하면서, 그럼 우린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 하며 원망하는 분들을 많이 봤다. 그러니, 하루 단 한 순간이라도 기분 좋게 웃게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다행한 하루고, 그 사람에게 감사하자고 하면 글쎄.... 기분탓인가 나이가 좀 든 분들은 확실히 표정이 밝아지고, 나이가 어린 분들은 복잡한 표정을 짓는 거 같다. 행복하고 싶어할 수록 본인이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 민감해져 더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행복의 역설 이제 더 이상 행복을 바라지 않고 아이들 덕분에 웃으면, 정말 감사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사는 건 때로는 또는 거의 매일 너무 고달프다.

그냥 그런 날이 있다

뭐라도 말을 하고 싶은데, 딱히 뭘 말해야할지 모르겠는. 일을 해야 하는데, 자꾸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산만해지는. 뭐가 막 되게 먹고 싶은데, 딱히 뭘 먹어야 할지 정해지지는 않고. 시간이 꽤 많이 남은 줄 알았는데, 막상 뭘 으쌰으쌰 해볼라 치면, 시간이 또 너무 짧게 느껴지는. 그렇다고 멀뚱멀뚱 그냥 있자니, 너무 시간이 긴. 어쩌라고 싶은데, 그럴 수도 있지 뭐 싶은. 여기가 좋아? 응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좋은데 또 그냥 그래. 여기가 좋은데 다른 데로 가고 싶어. 뭐 이런 생각을 혼자 하고 있는 중. 참, 평화롭고 잔잔한 일상인데, 매일매일 아무 일도 없는 날은 하루도 없다. 날더러 어쩌라고 싶은데, 이만하면 뭘 더 바라나 싶기도 하다.

읽을 수 있을 때와 써야 할 때

올해에 개인적인 목표 중 하나는, 책을 좀 읽는 것이었다. 뭐, 원래도 그렇게까지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으나 일년에 한 두 권? 아니면 대여섯 권은 읽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전혀 책을 읽지 않은지 꽤 되었다. 아마도 애들 낳고 난 이후부터였겠지? 사실 애들 낳고 키우고 이 때 즈음 해서, 책을 읽어도 아니면 뭘 읽어도 글씨는 읽지만 글을 해독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런 상태로 슈퍼비전도 하고 강의자료 만들고 보고서도 쓰고 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싶은 지경이고 함께 일했던 분들께 미안한 마음도 들고, 감사하기도 하다. 뭐, 여튼 이런 상태가 어느정도 괜찮아지긴 했어도 '독서'가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온 건, 얼마 안 된 것 같다. 사실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독서'를..

질병과 사람을 분리하는 건, 쉽지 않다.

어떤 유형의 아이들은, "이런 애는 다섯 명도 혼자 보겠다." 라고 회자될 정도로 수월하다. 실제로 4~7세 아동은, 교사 한 명 당 평균적으로 7~14명까지 담당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보조교사도 있고 먹거리나 청소 등등을 담당해주시는 다른 어른이 있긴 하지만, 성인 서너 명이 한 번에(또는 돌아가면서) 14명의 어린이를 돌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학교에 입학하면, 교사 한 명당 8세 이상되는 아이들을 20명 ~ 30명을 맡게 된다. 예전엔 50명도 넘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교사의 관심을 섬세하게 받을 수는 없는 환경이지만, 이 시기의 아동은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보살핌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유형의 아이에게는 양질의 양육 + 교육 + 훈..

나쁜 일을 하면, 진짜 천벌을 받을까?

범죄피해자 상담 교육 덕분에 그놈의 “권선징악”이 얼마나 나쁜 이념교육인지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놈의 “권선징악” 때문에, 나쁜일 하면 언젠가라도 천벌을 받는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다는데, 은연중에 나도 그런 생각한다는 게 소름. 그놈의 권선징악 때문에 범죄피해자에게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나쁜일(징벌) 당한 거겠지” 라고 생각해버리는 흐름이 생긴다고 한다. 정작 가해자는, 본인이 (처벌받을만한) 나쁜 짓을 했다는 자각이 없다고 하고. 더 나아가 자긴 나쁜 일을 당하지 않았으니까 잘 못 한 게 없다는 주객전도 논리도 가능하다고 한다. 가정폭력 가해자들의 흔한 논리와 변명이 “쟤가 맞을 짓을 해서 내가 벌 한 거니, 나는 잘못이 없다. 나는 가족을 사랑한다.” 이런 식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