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102

삶에서는 불행이 기본값이니까

삶은 불행이 기본값이라 불행하다 느낄 때는, 그러려니 하고 기분이 좋으면 '어머, 기분이 좋구나~' 이래야 한다. 라고 말은 해도 잘 안 되긴 한다. 근데, 어쩌다, 왜 행복을 쫓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을까? 왜 삶에는 목적이나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을까? 그냥 사는 건데. 인간이 뭐 대수라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이런 노래를 만들어준 그 누군가에게 고마운 기분이 들면 이정도면, 참 잘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면 뭔가 감동적인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근데, 얼마 전에,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대한 다큐가 나왔고 나름 화제라고 한다. 더보기 관련기사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 스피어스' 공개되며 미 연예계 자성의 목소리 이어져 (cine21.com) 브리트니 스피어..

지천명

성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치관은, 결국 성공을 해도 또는 실패를 해도 그 효용을 다하는 시기가 오는 거 같다. 원하는 걸 다 이뤘는데도 공허하다면 이젠 효용을 다한 가치관을 교정하거나 확장하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보통 그 시기가, 50대 전후로 오는 것 같다. 괜히 지천명이 아닌 듯.. 생의 가치를 "쓸모"로 따지는 가치관은 언젠가 야박하고 비인간적인 바닥이 드러난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지, 꼭 쓸모가 있어야만 살 가치가 있는지 생의 어느 지점에서는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우린 늙어가고, 쓸모가 없어지는 시기가 찾아올테니까. 나는 이 주제가 참 슬프고 아프다. 이 주제는 우리 엄마 아빠가, 나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아도, 그러니까 세상 쓸모 없는 사람이 되어도 그냥 오래오래 살..

남자는 (여자에 비해) 사랑을 모르는 걸까?

남자가 사랑을 모르는 걸까? 그냥, 남자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과 여자가 '사랑'이라고 여기는 게 다른 게 아닐까? 사실, 사랑은 추상적인 개념이고 실체가 딱히 없다 남자들이 사랑을 잘 모르는 게 아니라, 여자가 말하는 “사랑”이 뭔지는 잘 모를 것 같긴 하고 딱히 그게 '사랑'이라고 동의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근데, 남자들이 말하는 “사랑”이 어떤 건지, 여자도 모르기는 마찬가가 아닐까? 그러니까, "사랑해" 라고 했을 때 "그건 사랑이 아니야." 이거 아니고, "너에겐 그게 사랑이었구나. 나에겐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 우리가 서로 생각하는 사랑이 다르니, 우린 서로 사랑할 수 없겠구나" 정도가 아닐까.

행복의 역설을 알아도 사는 건 고달프다

사는 건 어차피 불행하다고, 불행이 인생의 기본값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무엇보다 행복하고 싶어할 수록, 본인이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 민감해져서 더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행복의 역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행복을 바라지 않고. 소소하게 유지되는 일상을 다행하다 여기고 음악을 듣고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서 감동을 하고 아이들 덕분에 낄낄대고 웃으면, 정말 감사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사는 건 때로는 또는 거의 매일 너무 고달프다

돌침대를 나르다가

무거운 돌침대를 내다 버리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뭐, 물론 혼자 버린 건 아니고 남편을 도와서 버리려고 하는데, 이 돌침대가 알고보니 300Kg 되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낑낑 거리면서 겨우 엘리베이터에 올렸고, 1층을 내려와 다시 낑낑 거리면서 현관까지 질질 끌고 나왔는데 엘리베이터에 돌침대를 태웠을 때 이미 땀범벅에 기진맥진 이었다. 돌침대를 내놔야 하는 목적지가 저 멀리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과속방지턱이 보였다. "우리, 저 과속방지턱을 넘어갈 수 있을까?" 정말 야트막한 방지턱이다. 평소에는 핸드폰을 쳐다보면서 가더라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 과속방지턱인데, 그 돌침대를 가지고 거길 지나려고 하니 겁이 덜컥 나더라. 그리고, 그냥 돌침대를 들고 거기를 지나야 하는 당시의 우리가 지금 딱 ..

오늘이 그런 날

어떤 날은 진짜 뜬금없이, 이제 그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날이 있다. 이건 마치, 마음에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구멍이 있어서, 때때로 아주 공허해지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다. 태어날 때 환영받지 못 해서 일까? 라고 짐작하는데.. 그냥 그런 짐작 눈길이 가지 않는 등 뒤에 구멍이 있고 그 뒤에 공허가 그 뒤에 죽음이 늘 따라다니는 것 같은 그냥 딱히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울적하지도 않는, 그냥 보통 날에 그러곤 또 갑자기 생각이 물러가고 그런데 그러고 나면, 내 이야길 조곤조곤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냥, 아무거나 산다는 것과 죽는 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과 앞으로도 살아 있다는 것 이게 다 뭔가 싶고 생에 대한 의지가... 그냥 그래서 그냥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데 그럴..

아이들이 자란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건, 정말 당연한 건데 매일 참, 신기하다. 요즘, 아이가 그 작은 몸으로, 가늘고 짧은 팔로, 동글동글 작은 손으로 나를 정말 있는 힘껏 안아줄 때가 있는데 참, 기분이 좋다. 어떤 순간엔 지극히 감동적이라 왈칵 눈물이 쏟아질 거 같을 때가 있기도 하다. 아이가, 세상 그윽한 눈으로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기도 하는데 이 어린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나 싶기도 하지만, 그 역시도 어느 순간, 지극히 감동적이더라. 참, 친해지고 싶은 아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인 나에게 실망하고 미워할 날이 올텐데 이 아이에게 부끄러운 엄마 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 부족한 건 어쩔 수 없고 완벽한 건 말이 안 되는 거지만, 비겁해지지 말자고.. 한 번 더 다짐한다.

그는 내게 종교같은 존재였다

나는 종교가 없다. 공부를 할수록, 세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자일수록 종국에는 '종교'를 갖게 된다고 하고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자알 알겠다. 하지만, 나는 현재로서는 앞으로도 종교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종교가 그다지 필요없는 것 같다고 하면, 주변에 신실한 사람들은 아쉬워하기도 하고 나를 답답하게 여기거나 불쌍해 보인다는 태도로 신의 존재와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는데, 이런 말을 굳이 듣지 않아도 나는 '신'이 있다는 그들의 신념과 종교적 태도를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내가 굳이 종교를 가질필요가 있나 싶다. 이런 내가, 인생의 어떤 순간에 '종교를 갖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내게 종교같은 존재였다. - 신이 아니라. 때로는 부모님보다 ..

과거를 돌이킬 순 없어도 만회할 순 있다

이미 지난 일은 절대 돌이킬 수 없어. 하지만, 만회할 수는 있어. 돌이키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다고 만회하는 것 까지 포기하면 만회하는 것조차 어려워질지 몰라. 기억해.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만회할 수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서 미안하다면 돌이킬 수 없다고 관계를 포기하지 말고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만회해. 너무 큰 잘못을 저질러서, 너무 큰 실수를 해서 이후의 삶이 후회로 가득하면 이미 저지른 잘못과 실수를 하기 전으로 돌아가서 없었던 일로 하고 싶겠지. 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서 너무 괴롭겠지. 명심해. 돌이키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만회할 수 있어. 그게 최선이야.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고 자책하는 건, 좀 웃기지 않아? 그건, 신..

일기를 쓴다는 것

초등학교 5학년 쯤 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언니와 나에게 일기장을 선물로 주셨다. 당시엔, 별 생각없이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일기를 쓰는 건 하루를 마무리 하는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한창, 일기 쓰는 게 재밌었을 때는 "이 일기 나중에 책 내면 재밌겠다. 안네 일기 같이" 와 같은 거창한 꿈(거의 망상 수준ㅋㅋ)도 꿨었는데, 한 1~2년 쯤 지나서 일기를 다시 봤을 땐, 첫 장을 넘기지도 못했다.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 오글거려서. 어쨌거나, 매일 일기를 쓰는 게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서, 대학을 졸업할 무렵까지도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어떤 날은 진지하게, 어떤 날은 유쾌하게. 어떤 날은 짧게 몇 줄, 어떤 날은 길게 몇 장. 아마도 그 이후엔, 정말 할 일이 많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