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감성

읽을 수 있을 때와 써야 할 때

임상심리전문가 최효주 2022. 11. 17. 11:08

올해에 개인적인 목표 중 하나는, 책을 좀 읽는 것이었다.

뭐, 원래도 그렇게까지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으나 일년에 한 두 권? 아니면 대여섯 권은 읽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전혀 책을 읽지 않은지 꽤 되었다. 아마도 애들 낳고 난 이후부터였겠지?

사실 애들 낳고 키우고 이 때 즈음 해서, 책을 읽어도 아니면 뭘 읽어도 글씨는 읽지만 글을 해독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런 상태로 슈퍼비전도 하고 강의자료 만들고 보고서도 쓰고 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싶은 지경이고 함께 일했던 분들께 미안한 마음도 들고, 감사하기도 하다.

뭐, 여튼 이런 상태가 어느정도 괜찮아지긴 했어도 '독서'가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온 건, 얼마 안 된 것 같다. 사실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독서'를 해보자고 목표를 정할 수 있고, 그걸 실천이라도 해볼 수 있게 된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책을 읽어야겠다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지만, 트위터에서 '책' 관련 글이나 추천글이 언젠가부터 눈에 들어왔던 게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트위터에서 자주 접했던, 또는 적극적으로 추천을 하는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졌고, 그런 책들을 위주로 사고 읽었다. 그래서 읽어보게 된 책이 

"어린이라는 세계"와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을까" 였다.

두 권 모두 아주 좋았다.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언급되는 책들에 대한 신뢰가 확실해졌다. 그래서 책과 관련된 내용이 있으면 마음을 눌러서, 여러 권 모일 때 책을 많이 사뒀다. 내 책장은 요즘에 나온 신간들로 새롭게 채워졌다. 기분이 좋다. 그냥 새로운 책으로 책장을 채워놓은 것 자체가 뿌듯하다. 그리고 책장이 채워지니,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독서'를 목표로 삼게 된 것이다.

흠. 생각해보니, 이런 과정으로 독서를 목표로 삼은 거였네. 싶군.

어영부영 읽기를 마친 책이

 

불안한 날들을 위한 철학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심리학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법

도파민 이야기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다. 그리고 나름, 병렬독서를 한답시고 이것저것 읽고 있는 중인 책도 있고, 읽다가 포기한 책도 있다.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관계의 심리학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뇌로 통하다.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오만하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이상한 정상가족

부모로 산다는 것

더 브래인. 삶에서 뇌는 얼마나 중요한가

양육가설

개성의 탄생

 

아, 적어놓고 보니까, 읽다가 그만둔 책이 생각보다 더 많구나 싶네. 그리고 책은 좀 그만사야겠다 싶고.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다. 책 표지나 내부에도 엄청난 찬사와 추천이 있어, 읽으면서 엄청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별로라서 완독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끝을 보겠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읽었고, 결과적으로 아주 흡족하고 좋았다. 이렇게 기분좋게 독서를 마치고 나서, 다음 책을 읽어봐야지 하는 신나는 기분이 들 정도였는데, 왜인지 책장에 있는 그 어떤 책도 딱히 땅기지가 않았다. 살 때는 꼭 읽어보고 싶어서, 더 꽂을 데도 없는데도 설레는 마음으로 사서 책장에 꽂아두고, 꽉 찬 책장을 보고 뿌듯했는데, 막상 읽고 싶은 책이 없다니. 

 

황망하구나.

뭐, 그럼, 다시 드라마 보고, 다른 거 좀 하지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든 뭐든 말이 좀 하고 싶었졌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것처럼 속으로 편지를 쓰고 있었다는. 내가 지금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서 내보내고 싶어진 거구나 싶었다.

그런건가? 읽어서 집어 넣었으니, 정리해서 내보내야 하는 건가?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이걸 쓰면 책을 좀 읽고 싶어 질까 싶어서. 그리고 이렇게 글이라도 써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자 마자, 책장에 책들이 또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안 읽어본 책을 새롭게 꺼낼지, 읽다가 만 책을 마무리 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근데, 뭐 아무렴 어때 싶기도 하다. 그냥, 읽을 수 있을 때와, 써야 할 때가 있긴 한가보다는, 나에 대한 새삼스러운 이해가 생겼다는 게 참 좋구나 싶다.

 

 

머스크 메론에게 트위터가 인수된 이후로, 트위터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트위터를 끝내야 하나, 그래도 계속 할까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트위터가 있어서 내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서 배출해야 하는 욕구는 아주 잘 충족되었고, 나의 사사로운 호기심들도 아주 많이 충족이 되었는데, 이걸 못하면? 또는 안 하게 되면 이제 어쩌지 싶은. 트위터 하면서 읽고 싶은 욕구, 쓰고 싶은 욕구 다 잘 충족이 되었거늘... 아... 내가 이런 걸로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