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감성 48

쉼없이 쉴 곳을 찾지 말고, 그냥 쉬길.

몸이 지치고 아파서 쉬고 싶을 때 일을 해야해서 쉴 수 없을 때 품위가 없어진다. 품위를 잃고 나면 야박해지고 야박해지다못해 천박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천박해진 자기를 보면 서글프고 자괴감이 몰려온다. 그래서 지치고 힘든 와중에도 품위있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강하고 귀한 사람이다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에 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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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싸우지 않는다고 갈등이 없는 건 아니지.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은 것 뿐이지. 그래... 싸우고 화해할 수 있으면 돼. 싸우지 않고,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관계보다야 싸우고 화해를 할 수 있는 게 훨씬 낫지. 암. (절레절레) 싸움이 괴롭지 않지는 않지... 싸우기 싫어. 싸우고 화해하기 전까지의 긴장감도 불편함도 너무 불쾌해. 화해하고 난 직후의, 그 풀어지는 기분도 사실 딱 싫어. 아이씨, 그래도 어째... 이게 사는 거라는데 이 싸움으로 상대가 큰 소리 치고 말을 더 많이 했다고 내가 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말을 더 잘 했다고 딱히 이긴 기분 드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긴 기분이 든다고 해도 썩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고 한숨만 푹푹 내쉬는 거지 뭐. 일단은. 일 다 끝내고 애들 ..

행복의 역설을 알아도 사는 건 고달프다

사는 건 어차피 불행하다고, 불행이 인생의 기본값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무엇보다 행복하고 싶어할 수록, 본인이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 민감해져서 더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행복의 역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행복을 바라지 않고. 소소하게 유지되는 일상을 다행하다 여기고 음악을 듣고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서 감동을 하고 아이들 덕분에 낄낄대고 웃으면, 정말 감사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사는 건 때로는 또는 거의 매일 너무 고달프다

돌침대를 나르다가

무거운 돌침대를 내다 버리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뭐, 물론 혼자 버린 건 아니고 남편을 도와서 버리려고 하는데, 이 돌침대가 알고보니 300Kg 되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낑낑 거리면서 겨우 엘리베이터에 올렸고, 1층을 내려와 다시 낑낑 거리면서 현관까지 질질 끌고 나왔는데 엘리베이터에 돌침대를 태웠을 때 이미 땀범벅에 기진맥진 이었다. 돌침대를 내놔야 하는 목적지가 저 멀리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과속방지턱이 보였다. "우리, 저 과속방지턱을 넘어갈 수 있을까?" 정말 야트막한 방지턱이다. 평소에는 핸드폰을 쳐다보면서 가더라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 과속방지턱인데, 그 돌침대를 가지고 거길 지나려고 하니 겁이 덜컥 나더라. 그리고, 그냥 돌침대를 들고 거기를 지나야 하는 당시의 우리가 지금 딱 ..

오늘이 그런 날

어떤 날은 진짜 뜬금없이, 이제 그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날이 있다. 이건 마치, 마음에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구멍이 있어서, 때때로 아주 공허해지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다. 태어날 때 환영받지 못 해서 일까? 라고 짐작하는데.. 그냥 그런 짐작 눈길이 가지 않는 등 뒤에 구멍이 있고 그 뒤에 공허가 그 뒤에 죽음이 늘 따라다니는 것 같은 그냥 딱히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울적하지도 않는, 그냥 보통 날에 그러곤 또 갑자기 생각이 물러가고 그런데 그러고 나면, 내 이야길 조곤조곤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냥, 아무거나 산다는 것과 죽는 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과 앞으로도 살아 있다는 것 이게 다 뭔가 싶고 생에 대한 의지가... 그냥 그래서 그냥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데 그럴..

아이들이 자란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건, 정말 당연한 건데 매일 참, 신기하다. 요즘, 아이가 그 작은 몸으로, 가늘고 짧은 팔로, 동글동글 작은 손으로 나를 정말 있는 힘껏 안아줄 때가 있는데 참, 기분이 좋다. 어떤 순간엔 지극히 감동적이라 왈칵 눈물이 쏟아질 거 같을 때가 있기도 하다. 아이가, 세상 그윽한 눈으로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기도 하는데 이 어린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나 싶기도 하지만, 그 역시도 어느 순간, 지극히 감동적이더라. 참, 친해지고 싶은 아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인 나에게 실망하고 미워할 날이 올텐데 이 아이에게 부끄러운 엄마 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 부족한 건 어쩔 수 없고 완벽한 건 말이 안 되는 거지만, 비겁해지지 말자고.. 한 번 더 다짐한다.

일기를 쓴다는 것

초등학교 5학년 쯤 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언니와 나에게 일기장을 선물로 주셨다. 당시엔, 별 생각없이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일기를 쓰는 건 하루를 마무리 하는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한창, 일기 쓰는 게 재밌었을 때는 "이 일기 나중에 책 내면 재밌겠다. 안네 일기 같이" 와 같은 거창한 꿈(거의 망상 수준ㅋㅋ)도 꿨었는데, 한 1~2년 쯤 지나서 일기를 다시 봤을 땐, 첫 장을 넘기지도 못했다.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 오글거려서. 어쨌거나, 매일 일기를 쓰는 게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서, 대학을 졸업할 무렵까지도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어떤 날은 진지하게, 어떤 날은 유쾌하게. 어떤 날은 짧게 몇 줄, 어떤 날은 길게 몇 장. 아마도 그 이후엔, 정말 할 일이 많기도 하고..

아이들이 자라는 걸 함께하는 엄마가 된다는 것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을 하루하루 함께하고 지켜보는 건 순간순간 재밌고 순간순간 짜증나고 아차하면 화를 내고 다음에는 후회하고 가끔씩 감동적이다. 아이들은 먹고 놀고 싸고 자는 게 대부분의 일상이고 같이 사는 가족, 어린이집 선생님과 친구가 만나는 사람이 전부이며 그저 햇살같이 웃고 건강하게 크기만 하면 된다. 생활도, 대인관계도 단순할 수 밖에 없는 아이가 엄마에게 매달리고 엄마에게 사랑을 퍼붓는 건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데.. 아이가, 문득 '엄마가 너무 좋아.' 하면서 얼굴을 손에 막 비비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기특하고, 사랑스럽고, 고맙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거 외에도 해야만 하는 일, 고민거리,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서.. 어쩌면, 아..

'엄마, 미안해'

저녁 여덟시 즈음, 피곤하고 졸려서 애들이랑 놀다가 애들 방 이불에서 잠깐 졸았다. 아들이 붕붕카를 타고 이불 위로 돌진해서, 자고 있는 내 머리를 붕붕카 바퀴로 들이받았다. 그리 세게 받은 건 아니지만, 일단 자다가 봉변 당한 처지라 깜짝 놀랐고 아프기도 했다. "아, 깜짝이야. 그러지 마, 엄마 아프다" 잠결에 놀라서 비몽사몽 중얼거렸다. 이제 겨우 만 두돌 되는 아들, 신난다고 끼끼 웃는다. 엄마랑 놀고 싶었던 모양이다. 거실에서 딸내미와 놀고 있던 애기들 아빠가 놀라서 버럭 소리 질렀다. "야! 엄마 자는데 아프게 하면 안 돼!" 아들이 엉엉 운다. 생각보다 오래 운다. 딴에는 엄마랑 같이 놀자고 한 거 같은데, 혼나는 게 당황스럽고 서러웠나 보다. 아빠가, 파인애플 먹자고 아이들을 불렀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