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감성

떠날 마음을 굳히고 나니

임상심리전문가 최효주 2023. 10. 25. 21:01

내가 성수동에 자리를 잡은 게, 2020년부터였던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가물가물하다.

3년 정도 된 거 같은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공유오피스 방 하나에 자리잡고, 마음에 들어 했다가 대단히 만족했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방을 바꾸겠다고  난리를 치고

그러다 다시 마음잡고-이건 재작년 겨울

그러다 또 옮기네 마네 하다가-이건 작년 겨울

여기가 제일이지 하면서 마음 다잡고-이건 올해 봄

아, 안 되겠다. 옮기자 - 이건 올해 늦여름

결국, 내년 3월로 이사가 확정됐다. - 이건 올해 9월.

그리고 날짜가 올해 12월로 앞당겨졌다. - 이건 어제.

이사가 확정되자마자, 신규 상담을 모두 막았다. 기존 상담은 어떻게든 성수동에서 마무리 짓고 가려고. 12월로 이사 시기가 당겨지면서, 기존 상담을 잘 마무리 해야한다는 고민이 늘긴 했다. 이건, 중요한 내 숙제.

성수동에서 마음이 떠나긴 떠난 거 같다.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힙하고 세련된 거리가, 그냥 예쁘기만 하다. 나는 이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새삼스럽다. 주말마다 들리는 파티 소리는, 흥겹게 들렸는데 이젠 그냥 좀 소음같다. 앞으로, 이사 갈 곳은 소음이 없는 곳이다. 소음으로부터 해방이다.

마냥 좋게 보였던 하나하나가, 딱히 매력적이지 않고
소소한 불편이, 괜히 짜증스러워지고. 지금 그러고 있다.

이젠 진짜, 옮길 때가 되긴 되었나 보다.


처음으로 개업할 장소로 성수동을 택한 건, 여러 가지 이유에서였다.
우선 공공기관 위탁사업을 진행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원래는 서울가정법원 가사상담을 하려고 했었지만, 결국 그렇게는 하진 않았다. 여러 이유로. 대신 EAP 상담을 많이 했다. 이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성수동이 있는 성동구는 나의 고향이다. 엄마아빠가 귀향을 한 후에도, 언니는 계속 성동구에 있었다. 그래서 성동구가 괜히 좋았다. 괜히 가족이랑, 나의 옛날과 좀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달까. 지하철을 타고 한양대역에서 뚝섬 역을 들어갈 때 보이는 아파트 공사장 앞에 “성동에 살아요” 문구를 보는 게, 그냥 그렇게 괜히 좋았는데..
언니가 작년 봄에, 서울을 떠나 엄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제 성동구에 가도 가족은 없다. 성동구에 가면, 그냥 나 혼자 덜렁, (남겨져) 있는 것 같다. 조금 쓸쓸한 기분까지 든다.

내가, 괜히 이제는 연고도 없는 성동구 성수동에 뭐하러 있나.. 이 거리에 나는 딱히 어울리지도 않는데.

하는 그런 쓸쓸함.
쓰고 나니, 조금 더 슬퍼졌다.

그래, 잘 결정했어.


앞으로 한 달 반 정도는 더 성수동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아마 날짜로는 몇 번 안 되긴 한테지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네.

며칠 전에,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이 동네도 많이 바꼈어.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 뭐가 자꾸 새로 생겨. 내가 예전에 알던 게 많이 없어졌어.

뭔가, 인생의 한 챕터가 완전히 넘어가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