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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은 최악이지만 Rorschach를 안 쓸 수는 없죠(feat. MMPI).

임상심리전문가 최효주 2022. 2. 7. 13:00

정서 평가 도구의 양대산맥은 단연코 MMPI와 Rorschach 이다.

MMPI를 실시-코딩-해석하는 시간과 Rorschach를 실시-코딩-해석하는 시간을 비교하면, Rorschach 쪽이 압도적으로 품이 많이 들어간다.

MMPI는 실시는 당사자가 직접하시고, 코딩은 길어도 5분 안쪽이면 끝난다. 요즘은 온라인 실시도 많이 해서, 코딩도 내가 안 해도 된다. 그러니까, MMPI는 내가 품을 들일 게 별로 없다. 배우는 것도, 학부에도 심리검사 과목에 포함돼 있고, 대학원 때도 한 학기 배우고, 학교에서 안 배워도 16시간짜리 워크샵 이수 + 정신병리 기초 과목 수강을 하면 실시, 해석이 가능하기는 하다. 임상 쪽에서 보면, MMPI 진입장벽이 낮은 축에 속하는 검사이다. 


그에 비해 Rorschach는 실시하는 걸 배우기 위한 시간 자체가 무지무지 오래 걸린다. 사람들마다 기준이 다르긴 하겠지만, Rorschach는 제대로 실시하는 걸 익히는데만, 꼬박 2년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매주 2사례 이상 2년을 해야 한다는 게 조건이다. 임상심리전문가 수련과정 또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수련과정을 거치다보면, 당연하게 하는 것들인데, 그렇지 않다면 이 검사를 실시할 기회 자체가 많이 주어지지 않아서, 배우고 싶어도 중도에 포기하시는 선생님들도 많이 봤다.

그리고 이렇게 실시하는 걸 숙달하게 된다고 해도 Ror는 실시, 코딩, 해석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실시하는데 기본이 30분 이상이고, 오래 걸리는 사례는, 나는 일단 4시간까지 해봤다. 검사 해석을 위한 중간 단계인 코딩은, 처음 해볼 때는 이틀 걸렸다. (지금은 웬만하면 30분 안쪽이면 끝나지만) 그리고 해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양적분석, 질적분석까지 해서, 공부를 해도해도 끝이 없다.


근데, MMPI랑 Rorschach 검사를 동시에 진행하고 보고서를 쓸 때 보고서에 들어가는 비중은 MMPI:Ror=7:3 정도다. 이게 올바른 비율이다. Ror가 7이 아니라, 3이다. 심지어 행정기관으로 제출되는 등의 특수한 목적의 보고서의 경우 9:1 정도의 비율로 쓴다. MMPI가 9다. Ror는 겨우 10% 정도만 써야 한다.

그렇다. Ror를 실시하고 채점하는데 저리 긴 시간을 허비하고도, 실제 보고서에는 MMPI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결정적으로, 저렇게 힘들게 배우고, 보고서 쓰기까지 저렇게 오랜 시간을 품을 들여도, MMPI 보다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게 Rorschach의 문제다.

효율성으로 따진다면, Ror는 안 쓰는 게 맞다.
실제로 이런 문제 때문에 안 쓰는 곳도 늘었다. 그러다보니 수련과정에서 Ror를 제대로 교육을 못 받는 경우도 늘었다. 전문가 수련 과정 3년을 끝내고도 Ror 못 쓴다고 하시는 선생님이 늘었고, 쓰지 말라고 배웠다는 말도 직접 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효율성을 따진다면 Rorschach는 안 쓰는 게 맞다. 신뢰도, 타당도를 따져도 안 쓰는 게 맞다.

그런데, '효율성'이 우선순위 1순위가 아닌 영역이 있다.

MMPI는 정말 좋은 검사이고, 감히 현존하는 집단지성의 정수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검사이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MMPI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 중에서 비추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그 영역을 MMPI 비추지 못하는 이유는, 그 영역 자체가 드러나지 않아서 비추기 어려운 영역이라서 그런거겠지.

당연하게도, 우리의 마음의 영역 중에선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측정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고 측정을 한다고 해도, 정확하게 측정했다고 자신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는 걸, 인정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싶네.



사실, 한 사람의 Rorschach 검사 결과와 MMPI 검사 결과는 본질적으로는 같게 나온다. 한 사람의 마음이라, 기본적으로는 비슷하게 해석되는 방향으로 나오는 거,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MMPI가 정말 다면적인 인성을 포괄적으로 객관적으로 굉장히 세밀하게 알려주기는 하지만, 우리 마음에는 MMPI 만으로는 커버되지 않는 영역도 있고, 현존하는 심리검사 체계 내에서는 Ror로만 파악할 수 있는 심리 영역이 존재하긴 한다는.


그러니 뭐, 더럽고 치사해도 Ror 를 배우고 쓰는 거지 뭐. 실시하고 채점하는 데 거의 4~6시간을 쓰고도, 5분도 투자 하지 않은 MMPI보다 비중도 훨~씬 적게 쓰이지만.

그 몇 안 되는 그 몇 줄은 그 검사 아니면 쓸 수 없는 문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