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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심리평가 보고서] ‘지각 및 사고’ 영역을 기술하는 요령

임상심리전문가 최효주 2013. 6. 28. 04:07

며칠 전 walden3에서 “심리평가보고서 작성 시 ‘지각 & 사고’ 영역은 어떻게 기술하는가” 는 제목의 내용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써 봅니다.


월덴지기 님 말씀처럼, 보고서 형식을 유지하려고 애쓰다가, 사고나 지각 부분에 딱히 큰 문제가 없어서 별로 쓸 말도 없는데, 어쩔 수 없이 로샤의 구조요약 지표를 그대로 차용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아마 수련 초기에 이렇게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럴 경우엔, 차라리 이 부분을 안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요. 아동이나 청소년의 경우, 이렇게 보고서를 작성할 때 전체적인 보고서 흐름이 더 매끄러워지기도 합니다. 또는, 수검자 특징에 맞춰 보고서를 재구성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월덴지기 님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지각 및 사고’ 부분을 기술하는, 또 다른 방법을 제안합니다. ‘지각 및 사고’부분을 기술할 때(도!)

1) ‘의뢰 사유’를 고려해 보십시오.

2) 심리평가 보고서에 ‘지각 및 사고’가 왜 필요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가상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취업 준비 중인 20대 남성이, ‘취업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요즘 잘 안 된다. 어서 빨리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됐으면 좋겠는데, 혼자서는 안 된다.’라는 주호소로 내원했습니다.

면담을 통해, ‘두 달 전, 처음으로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졌다. 이전에는 한 번도 실패나 낙방한 적 없었다. 이 자격증 때문에 공부 스트레스 많긴 했는데, 그 이후로 집중이 잘 안 되고, 공부할 의욕이 나질 않아서 한 달째 같은 쪽만 펴 놓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통 잠도 잘 오지 않고, 컨디션도 안 좋아졌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점점 싫고, 집에 있어도 혼자 지낸다.’라는 추가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런 경우, 이 수검자의 stressor는 분명하고, emotion도 비교적 쉽게 기술할 수 있습니다.

‘자격증 시험에서 처음으로 낙방했고, 지금은 되게 고통스러움. 무기력하고 위축돼 있음.’ 뭐 이런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어서 빨리 공부를 열심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심리검사에서 무엇을 알아내면, 이 사람이 되도록 빨리 공부에 매진할 수 있게 될까요?

심리평가자의 고민은 이렇게 시작해야 합니다.


일단,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좋아야하고 의욕도 살려야겠죠. 또는 어떤 식으로든 취직이 되면, 공부할 이유가 사라지니 stressor가 제거될 수도 있겠고요.


심리평가자가 이 사람을 시험에 붙여준다거나 취직시켜줄 순 없으니, stressor를 제거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뭐, 대부분의 경우, 심리평가자는 물론 상담자(치료자)도 stressor를 제거하는 건 불가능 하다고 볼 수 있지요.)


자, 그럼, negative emotion을 ventilation을 하면 되려나...? 이건 괜찮을 수도 있겠습니다. 감정적으로 정화가 되면, 정서적 부담이 낮아지고 기력을 좀 회복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긍정적인 활동, 성공적은 활동을 늘리는 것도 좋겠지요. (부정적인 정서는 빼주고, 긍정적인 정서를 추가하는 것)


근데, 실패경험이 누구에게나 어려울 수 있지만,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모두 이렇게까지 좌절하고 무기력해지지는 않습니다.


단 한 번의 실패로 이렇게까지 좌절하게 된 것은, 이 사람의 고유한 심리적 특징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의 고유한 심리적 특징은, 성격적인 면에서 설명할 수 있고, ‘지각 및 사고’ 부분에서도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유한 심리적 특징이 ‘어서 빨리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가 개입해야 하는 바로 딱 그 지점이니까요.


만약, 성격과 관련된 특징이 핵심 문제라면, 공부에 매진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고 예상될 겁니다. 하지만, 만약 ‘지각 및 사고’부분에서 이 사람의 고유한 심리적인 특징을 잡아낼 수 있다면, 이후의 상담(치료) 계획을 세우고 진행할 때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의뢰사유를 보면, 이 사람이 세상을(자기 주변 상황과 타인을) 어떻게 지각(인식)하는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생각을 전개해 나가는지,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차 있는지는 대충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이런 경우 수많은 정보 중에서 유독 부정적인 정보에만 초점을 기울이거나, 부정적인 결론으로 도달하는 논리전개 방식(Ex 파국적 사고)을 보일 수 있습니다. all or nothing의 흑백논리가 있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현재 자신이 처음으로 ‘실패’했다는 좌절감에서 헤어나지 못해 계속해서 ‘반드시 나는 성공만 해야 하는데, 이 시험에서 떨어졌으니, 나는 벌써 실패했다.’는 식의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뭐, 이런 식으로 대충 감을 잡아 봅니다. 그리고 이런 짐작에 맞는 검사 sign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또는, 현재 수검자의 문제적 상태와 일치하는 또는 야기했을 법한 지각이나 사고과정 및 내용에서의 특징을 찾아냅니다. 이건, 로샤에만 있지 않습니다. full 검사 결과에 전반적으로 다 펼쳐져 있습니다. 그냥 골라내면 됩니다.


SCT에서는 사고 내용, 흐름(논리 전개방식)은 비교적 명백하게 나타나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이미 실패했다.’ 라고 답을 했다고 가정한다면, 이 내용은 그냥 ‘지각 및 사고’ 부분에 주워서 담으면 됩니다. 여기에 ‘나의 야망은 끝났다. 이젠 다 소용 없다.’ 이런 글을 읽으면, 읽는 사람도 한숨이 푹푹 쉬어 집니다. 답답해서. 이런 내용도 ‘지각 및 사고’ 부분에 주워 담으면 됩니다. 뭐, 이런 식이죠.


지능검사에서(K-WAIS)는 주로, 지각과 사고의 내용과 흐름, 편견 모두 확인 가능합니다.

흠.. 아무래도 이 내용은 검사내용 노출이 염려되어 자제하겠습니다. 다만, 언어표현이나 행동관찰을 통해 지각 및 사고와 관련된 특징들이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드러납니다. - 이게 참, 중요한 건데, 여기서는 표현할 방법이 없군요.



로샤에서는, 보고서에 구조요약을 차용하는 건 쉽지만, 다른 사람들이 읽기가 어렵지요. 임상심리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사람에겐 그저 무의미 철자일 뿐입니다. 차라리 형태질이 minus인 반응의 protocol 을 그대로 쓰는 게 훨씬 생생하고 정보가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 더 고급스럽게는, 논리적 오류(DV, DR, ALOG, CONTAM, CONFAB)가 발생한 내용을 풀어서 써줍니다. 예를 들어, 사소한 말실수가 여러 번 반복됐다면(DV) 일단 부주의하거나, 명료한 소통에 무심한 경우일 수 있겠죠. 그렇다면, 현재 힘든 상태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원래 이런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 이게 많으면 공부해도 효율성이 떨어질 겁니다.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사용하는 용어가 많다는 의미일 수 있으니까요. 이럴 경우, 의뢰사유와 엮어서 ‘용어 사용이 부정확한 경우가 있어, 학업 내용 이해나 의사소통에 제한이 있을 수 있음.’이라고 보고서에 기술해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각각의 특수지표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지 따져보십시오. 그리고 이런 특수지표의 조합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도요.

예를 들어, Dd 빈도가 높으면 시야가 협소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 selective attention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만약 부정적인 생각에 골몰해 있다면 negative + selective attention이라는 새로운 조합이 나옵니다. 즉, 부정적인 정보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거죠. 만약, 예를 든 이 남성이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는 자기의 장점이나 가능성, 주변에서 자기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을 제대로 볼 수 없겠죠. 점점 더 부정적인 정보에 초점을 맞추면 자연히 사고는 파국적으로 흐르게 됩니다. (파국적 사고는 SCT에서 주운 내용을 예로 써주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라면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잘 풀리지 않는 공부를 대하는 것 자체가 고통을 초래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안 좋은 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안 좋은 점에만 초점을 맞출테니, 사람을 대하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겠죠. 공부가 잘 안 되는 상태는 두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니 점덤 더 활동을 최대한 축소해서 고통을 최대한 덜 받으려고 하게 되겠지요. 이런식의 악순환이 이어지면, 점점 더 나락으로 빠질 겁니다.<- 이런 내용을 그대로 보고서에 기술해주면 됩니다.


HTP에서도 TAT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지각과 사고 내용과 전개방식은 이런 흐름으로 충분히 잡아낼 수 있습니다. 보고서에 수검자가 한 말을 그대로, 또는 핵심적인 내용을 잘 추려서 기술하고 의미를 해석한 뒤, 평소 어떻게 문제로 발현될 수 있는지를 풀어서 써주면 됩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는데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의뢰 사유’ 안에, 수검자의 ‘지각 및 사고’의 문제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걸 검사 sign으로 찾아내면 됩니다. 내용을 쓰고, 의미를 해석한 다음, 이런 내용이 수검자의 주호소와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를 엮어줍니다.


2) 심리평가 보고서에 ‘지각 및 사고’가 왜 필요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보통, stressor에 의한 emotion은 거의 결과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지각 및 사고’에는 성격만큼이나 원인으로 유추되는 수검자의 고유한 심리적인 특징이 분명하게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니 한 번쯤 이런 방식으로 ‘사고 및 인지’부분을 고민하고 기술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