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할 수 있는/형식 없는 감상평

[서적] 긴긴밤

임상심리전문가 최효주 2023. 10. 18. 17:09

 

 

긴긴밤은 동화책 이다. 뿔이 잘린 코뿔소와 펭귄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동화책은 그게 다가 아니다.

이들에게 유난히 불친절하고 무자비하며 폭력적인 세상에서, 약자 또는 소수자로 살아가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왜 꼭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살아가는 것처럼 산다는 게 뭔지 아주아주 절절하게, 새삼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별 일 없이, 갈등이나 문제 없이, 싸움이나 불편함 없이 하루하루 보내는 게 진짜 행복한 삶일까... 그렇게 평온하고 평탄하기만 한 삶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삶일까..

아침에 눈을 뜬 이후로, 조금도 힘들지 않고 즐겁고 편안한 활동을 하고 잠이 들고, 다음 날이면 또 즐겁고 편안하고 아무 갈등이나 불평이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잠이 들고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는 게, 정말 편안하고 평온하고 행복하긴 할까...? 이런 시간을 오롯이 혼자 보내면 괜찮을까...

 

온갖 풍파를 겪고 힘들고 지치고 심지어 아프더라도, 누군가와 함께라면 혼자 평탄한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한 거겠지 하는, 새삼스럽고도 아름다운 진리를 이 동화책을 읽는 동안, 슬프고 따듯하게 되새겨봤다.

 

 

 

몇 년전,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던 긴 시절, 이런 느낌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 이미 아주 긴 전투를 치르고, 무수히 많은 적을 무찌른 후라 내 등 뒤로 까마득하게 쓰러진 적들이 있고 나는 완전히 지쳐있고, 헉헉 대면서 칼에 기대어 겨우 서 있는데,

고개를 들어 앞으로 보니, 내 눈 앞으로는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적군이 까맣게 펼쳐진, 그런 장면 앞에서 슬프고 두렵고 무기력한, 그런 기분.

(빙한테 이런 기분에 대해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그려줌.)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전투를 치른다면... 그래도 그 장면에 있을만 하겠지?

 

지금이야, 당시만큼 내 삶이 고단하고 치열하지 않지만, 이런 시절에도, 그 때처럼 고단한 시절에도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라면 충분하다 싶다. 

 

긴긴밤은, 참담한 심지어 절망적인 삶에서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삶의 의미가 되어줄 수 있다는 걸 정말정말 따듯하고 아름담게 보여준다.

 

고단했던 그 시절에 한껏 지쳐있을 때, 긴긴감을 읽었다면 조금 어쩌면 많이 울고, 그날 하루를 보낸 스스로를 위로하고 힘든 시간을 같이 보내던 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조금은 기운을 차렸을지도.

 

이러나 저러나 좋은 책이라는 뜻.

빌리지 말고, 소장하세요! 라고 추천하고 싶은 동화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