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수의 역할이 주어진다.
그리하여... 상황이나 시간에 따라서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이 제각각이고, 이와 함께 누군가의 말투와 태도도 달라진다.
간단한 예로,
어떤 여자는 직장에서 동료 또는 친구면서 후배인 동시에 상사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 여자는
집에서 어떤 남자의 아내인 동시에 부모님에게는 딸이고, 시부모에겐 며느리이고 형제 남매들에겐 동생이거나 누나 이기도 하다.
어떤 남자 역시 일하는 곳에서는 친구, 동료, 후배, 상사 역할을 맡는다.
그 남자는
집에 가면, 어떤 여자의 남편인 동시에, 부모님에게는 아들이고, 사위이고 오빠나 동생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상대하는 사람이나 상황, 시간에 따라 말투와 행동, 태도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상당하는 사람이나 상황, 시간이 달라져도 별다른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 이렇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역할이나 태도를 '페르조나' 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
* 그리고, 시간이 오래 지나도, 상황이 달라져도, 상대하는 사람이 바뀌면서 뭔가 바뀌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관되게 유지되는 태도나 행동, 생각을 '성격'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또는 '특별히 강점을 보이는' 역할이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싫어하는' 또는 '미숙한' 역할도 동시에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많은 아버지들이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몰두해서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아버지나 남편으로서의 역할은 약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일 밖에 모르는 무심한 남편/아버지를 아내-자녀들은 원망을 하고, 열심히 한 몸 바쳐 희생적으로 일한 남편은, '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 했는데, 가족이 인정을 해주지 않아 섭섭하다'고 하소연 하여, 자식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집안에 분란이 폭발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또는... 아들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효자 노릇을 하지만, 남편으로서는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로 비춰질 수 있겠다.
반대로 엄친딸 이라 불릴 정도로 부모에겐 훌륭한 딸 노릇을 했지만, 엄마로서는 자식을 들들 볶는 악녀가 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예로, 엄마로서, 아내로서는 충실하지만, 개인의 목표와 이상을 달려가는 '이기적인 나' 역할에는 약한 여자들이 많다. 이런 경우, 자식들이 결혼하면 급격하게 공허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빈 둥지 증후군'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다양한 역할 중에서 유독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역할만 잘하려고 애쓰는 '고집(rigidity)'이 관계 안에서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겠다.
역할 유연성이란... 상황에 따라서 바뀌는 본인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다양한 역할을 되도록 고르게 +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자, 그렇다면 <궁극의 역할 유연성>은 뭘까?
<궁극의 역할 유연성>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예를 들어보자.
거의 10년 전, 장 쟈크 샹뻬의 "속 깊은 이성 친구"라는 책에서 빵 터졌고,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에피소드를 어렴풋이 소개한다.
이야기의 주인공과 그의 아내는 오래된 커플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때로는 아빠처럼, 남동생처럼 선생님처럼 남자친구처럼, 그냥 친구처럼 대해준다.
여자는 남자에게 때로는 엄마처럼, 누나처럼, 여동생처럼, 여자친구처럼, 그냥 친구처럼 대해준다.
여기까지는 참, 이상적인 커플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 커플이 잘 지내다가다도 자주 싸우는 이유는
남자가 여자에게 엄마 역할을 바랄 때 여자는 여동생 처럼 굴고, 선생님을 바랄 때 여자친구처럼 굴고 여자친구를 바랄 때는 엄마처럼 굴기 때문이라고 했다.
푸핫.
그러니까 <궁극의 역할 유연성>은 같은 상대를 대하더라도, 상대의 컨디션에 따라 본인의 역할을 변화시켜주는 것이지 않을까.. 하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본다.
다른 표현으로.. 뭐 '코드를 맞춘다' 거나, '상대에게 채널을 맞춘다'는 식으로 바꿔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채널이 좁다, 어떤 사람은 참 코드를 맞추기 어렵다는 식의 표현도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살기 위해 애쓰라고 권하고 싶지도 않다. ㅎㅎ
다만, 이런 누군과의 관계 안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감은 느껴볼 수 있지 않을 까.. 다른 누군가와 관계면에서 갈등이 생길 때, '역할' 면에서 분석하는 게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런 역할 유연성 면에서 꼭 하고 싶던 이야기.
많은 엄마들이, 자녀에게 유독 "교육적인 엄마" 역할에 매진해서 "다정한 엄마" 역할에 소홀하다. 반대로, "허용적인 엄마" 역할에만 너무 익숙한 나머지 "훈육하는 엄마"로서는 너무 미숙해서 자녀의 버릇을 망치고 만다.
부모가 알아야 할 것, 그래서 부모교육할 때 많이 강조하는 것은 '역할 면에서 균형을 맞추라는 것' 이다. 하지만, 많은 엄마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왠지 거부감이 드는 역할을 하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려 안타깝다.
엄마로서.... '교육적인 엄마'인 동시에 '따듯한 엄마'가 될 수도 있는데,
많은 엄마들이 유난히 '교육적인 엄마'에 매진한다.
그래서 부모교육을 할 때는... 부족한 '따듯한 엄마'로서도 역할해 보시라고 권한다.
그러면,.... 안타깝게도 '나는 감정 표현이 잘 안된다. 애가 틀린 걸 요구하는 데 어떻게 받아주냐. 한 번 받아주면 나중엔 어떻하냐. 버릇 망칠까 겁난다' 등등의 원망과 비난이 쏟아진다.
다정한 엄마가 되라는 말이... '교육적인 엄마'가 잘 못된 거라고, 그러니 이제 그 엄마는 그만하라는 메시지라고 단단히 오해하시는 것 같다. 그냥 단지 '다정한 엄마' 역할을 추가하라는 의미인데.
역할은 양자택일하는 사안이 아니다. 확장하고 늘릴 수 있는 것이다.
본인에게 자연스럽고 능숙한 역할을 늘린다는 것은, 본인의 행동반경을 확장하는 의미가 있어서,
성격의 성숙과도 관계가 있다.
새로운 기술을 익혀서 자연스럽게 배게 하려면, 반복과 연습만 하면 된다. 이런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고, 그러면서 상처를 입거나 실망하고 좌절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그래도 겪으면 새로운 기술을 익히게 될 것이고, 아프고 힘들어서 포기하면 그 기술을 익히기 어렵게 될 것이다.
역할이라는 것도, 습관과 비슷하다. 또는 어떤 능력이나 기술과 유사한 면도 있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려면
그냥 타보는 방법도 있고, 타는 방법을 책을 읽어서 알아보는 방법도 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근데, 넘어지지 않게 혼자서 잘 타려면 어쨌거나 자빠면서 계속 타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여기저기 혼자 타고 다녀서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자전거 자체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면, 몇 번 타보고 힘들고 아파서 포기하면 자전거라는 훌륭한 레져, 교통수단은 남의 이야기다. 혹은 넘어지지 않게 혼자 타는 방법을 익혔으나, 몇 번 타보고 더 이상 타지 않으면 자전거만 녹스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타는 내 실력도 같이 녹슨다.
새로운 역할을 익히는 것은.. 자전거 타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과 비슷해서
자꾸 해보면 자연스럽게 체득된다. 그런 과정에서 상대와 티격태격 할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이나 나에게 실망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일체 포기해버리면, 그 역할은 영영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부모-자녀 관계로 돌아가면..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것에만 익숙한 아들은, 반항하는 역할에는 영 서툴기 쉽다. 그러면... 반항을 해야 하는 순간에.... 마냥 참다가 끝내 폭발한다. 제대로 반항을 해본 적이 없어서 반항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극단적으로 분출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엄마들은... 애가 안 하던 반항을 한다고 당황하고 냉랭하기 쉽상이다.
이러면... 잘 지내왔던 것처럼 보였던 엄마-자녀 관계가 순식간에 깨지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다. 알고보면, 원래.. 별로 건강하지 않은 관계였지만.
그리고.. 아들은 제대로 반항하는 역할을 배우기 어렵게 되고... 엄마는 수용하는 역할을 발휘하기 어렵게 된다.
정리하면..
아까 썼던 대로,
사람들은 대체로 선호하는-능숙한 역할이 있다. 그게, 뭐 시간이나 대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마냥 한 가지 역할에만 몰두한다.
어떤 사람은... 마냥 공주 역할만
어떤 사람은... 마냥 대장 역할만
어떤 사람은 부하나 막내 역할만
어떤 사람은 내내 희생적인 역할만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역할만
어떤 사람은 조용히 주위 분위기를 살피는 수동적인 역할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요구를 받아주는 허용적 수용적인 역할만
하려고 한다.
문제는 그 어떤 사람이 이런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상황이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이 역할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핵심적인 문제는 그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역할에 치중한 나머지 다른 역할에는 미숙할 뿐 아니라 무관심 하며 자신이 그런 다른 역할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거나, 자신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과소평가 한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 또는 누군가의 싫은 모습을 떠올려 보시길.
머리 속에 떠오른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도 상대방이, 상황이 바뀌어도 제가 하고 싶은 역할만 고집하기 때문이거나, 그 사람이 상황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무시하기 때문은 아닌가?
본인도... 그렇게 비쳐질 수 있다면 찔리지 않을까?
- 실은 나도 쓰면서 많이 찔림. ㅎㅎ 사실. 이 글은 게으른 요즘 생활을 청산하는 개인적인 의미가 있음.
그러니..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잘하는 역할은 어차피 몸에 배었으니 이제 더 잘하려 굳이 애쓰기 보다는...
본인이 싫어하고 잘 하지 못해서 그 역할을 해야 할 때는 피하고 긴장하고 쭈볏거렸던 바로 그 역할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
이게 역할 유연성을 늘리는, 나아가서 적응력을 키우는 효율적인 노력이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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