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은...
내가 기분 좋아하면 덩달아 미소 짓는 사람,
내가 울쩍하면 무슨 일 있냐고 걱정하고 같이 슬퍼하는 사람,
내가 화내면 씩씩 대면서 같이 화내 주는 사람,
내가 곤란해하면 같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사람
나의 적은
내가 기분 좋아하면 기분이 울컥해지는 사람
내가 울쩍하면 슬며서 미소 짓는 사람
내가 화내면 도망가거나 내게 덤비고 싸우는 사람
내가 곤란해하면 행복해하거나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드는 사람
내 편은 "나와 같은 감정의 흐름을 보이는 사람'으로 "나와 소통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게 마음으로 실제적으로 도움을 줘서 "나를 든든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따듯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소속감)을 느낀다.
나의 적은 "나의 기분과는 상반되는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대결구도가 형성되지 않더라도 통하는 느낌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나를 방해하고 곤란하고 피곤하게 만들며 내 기분을 상하게 한다. 이런 사람은 되도록 곁에 두고 싶지 않으며 관계되는 일 자체를 꺼리고 싶고, 옆에 있게 되는 경우에는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
내 편이 많을 수록 생활이 활기 차고 자신감이 있고 곤란한 일을 겪어도 맘 편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서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이 오래 가지 않는다.
나의 적이 많다면.... 나는 소외감을 느끼고 사람들이 싫고 세상은 살기 어려운 곳이 된다.
자, 이제부터 진짜 하고 싶던 던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당신에게는 "내 편"이 주위에 많이 있나?
아니면, "나의 적"에게 둘러 쌓여 있나?
관점을 좀 바꿔서...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편"이 돼주고 있는가? 확실하게, 언제, 어디서든!
당신은 누구의 "적"인가? 확실하든.. 애매하든..!
나의 편과 나의 적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기꺼이 누군가에게 편이 돼주고 있고, 누군가에게는 '적'으로 행동하고 그에게도 '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한 가지, 가상의 에피소드를 좀 들어본다면...
아이가 시험에서 80점을 맞고 만족스러워 한다. 그 전에는 70점을 맞아서. 기쁜 마음으로 엄마에게 "엄마, 나 시험 잘 봤지?"라고 엄마에게 자랑한다.
엄마는, 못내 아쉬워하면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래... 잘 했다. 그래도 다음엔 100점 맞아와." 라고 답한다.
자, 아이는 엄마를 내 편이라고 느낄까? 아니면.... 내 편인 것 같기도 한데.... 내 편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고 느낄까?
그래도 엄마라면... 아이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적어도 같은 감정을 조금이라도 함께 느끼고 있음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사람은 순간순간 한 가지의 감정만 느끼지는 않으니까. 엄마는 아이가 저 점수를 자랑하는 순간 그저 아쉽고 한심하고 조바심만 날까? 지난 번에 비해 성적이 올랐음이.. 아이가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음이 뿌듯하고 기분 좋게 느껴지는 마음이 단 1%도 없을까?
기쁜 마음을 기꺼이 표현하는 게 가식적인가? 없는 걸 만들어 내면 가식이겠지만... 있는 마음을 표현하는 건 가식이 아니다. 긍정적인 기분(아이의 만족감에 기뻐지는 감정)과 부정적인 기분(엄마로서 답답하고 한심한 기분) 중 좋은 쪽을 먼저 선택해서 표현하는.. 선택의 문제이다.
만약... 아이가 저리 뿌듯해 하는데 엄마라는 사람에게서 같이 기뻐하는 마음이 정말 1%도 들지 않는다면... 그 엄마는 확실히.. 아이의 편이 아닐테지.
엄마는 훈육과 양육을 담당하는 교육적인 대상이기 이전에, 아이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이며 아군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편도 니편도, 적도 아닌... 애매한... 존재감을 발휘한다면, 빈번하게
아이는 '확실한 내 편'을 갖을 기회가 처음부터 박탈될지도 모른다.
투정부리고 고집부리는 3~4살과 7~9살 아이들을 일명 "미운 3살, 미운 7살" 이렇게 지칭하곤 하는데,
이 때의 아이들은 미운 짓을 많이 하는 것은 맞지만..
부모의 적은 결코 아니다. 그러니 부모가... 아이에게 '적'으로 인식되면 곤란하다.
만약.. 형제나 남매, 자매가 있는 경우, 이 관계는 든든한 '내 편'이기도 하지만, 가장 확실한 '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는... 마냥 "내 편"이지 않은가?
게다가...
요즘 학교에서는 성과에 치중해서.... '경쟁' - 말 그대로 대결구도에 아이들을 너무 일찍부터 강렬하게 노출시킨다. 이 '경쟁'에서 내편은 없다. 아이들은 협동으로 더 좋은 성취를 이루는 경험, 같이 해서 든든하고 따듯한 느낌을 경험하기 보다는 "쟤보다 잘해서 더 좋은 점수를 받는" 냉혹한 경쟁에 심리적으로 몰두한다. 유대관계와 소속감이 중요해주는 이 시기에 아이들은 협동 보다 경쟁에 치중한다. 지천에 적군이 득실거리는 세상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몰린다.
요즘...아이들은 일찍부터 성적과 몸싸움으로 "순위"와 "계열"을 정해서 편을 가르고, '조건이 붙은' 소속감에 집착하고 '왕따'를 놀이처럼 한다.
함께 감정을 나누는 것으로 온전하게 편안함과 따듯함을 경험하지 못한 집단 활동은... 깊은 유대감과 공감으로 나아가기 어렵지 싶다...
한편....배우자 역시.... 아주 분명하게 "영원한 내 편"이다.
그 배우자가 확실한 "적"으로 인식되면, 인생이 피곤해지고 하루하루가 곤욕스러워진다.
우리가 주변에서 알고 있는 대부분의 '부부'는 서로에게 든든한 '편'인 동시에 '적', 심지어 철천지 원수가 되기도 한다. - 이건 무슨 형제관계도 아니고.
내 배우자를 나의 가장 든든한 '아군'으로 삼으려면... 내 역시 내 배우자의 든든한 '아군'이 돼줄 수 있어야 겠지. 때때로 밉고 원망스럽고 한심하고 답답하고 화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나의 배우자는 나의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건 내 마음에 달려 있다.
덧,
누군가의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이상하게 '적'이 도처에 깔려 있던데.... 비극적이게도...
그 이야기를 하는 그가... 어쩌다가 그 '적 들'의 '적'이 되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덧의 덧,
멍청한 아군이 똑똑한 적군보다 위험하다
- 는 비스므레한 말을 영화 [7급 공무원]에서 듣고 한동안 깔깔대고 웃었는데
곱씰을수록 옳은 말이지 싶다.
덧의 덧의 덧,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다른 사람의 불행을 접했을 때..가 있다고 한다.
마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돠 다르지 않은 심리겠지만...
이 말을 듣고는 다른 사람이 곤란에 처했을 때.. 은근히 떠오르는 음흉한 미소를 감추는... 나의 시커먼 마음에 대한 면죄부 같아서 마음이 가벼워졌었다.
그래... 아무리 언니라고 해도.... 신랑이라고 해도... 쌤통일 때 있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 한켠에 그들의 곤란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더라... 그들은 나의 든든한 아군이고.. 나는 그들의 든든한 아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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