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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청소년 상담] 아동 청소년 내담자가 환경에 치일 때

임상심리전문가 최효주 2014. 1. 28. 04:28

아동 청소년 내담자와 상담을 진행하게 되는 경우

내담자가 가진 내적 자질과 성장욕구는 건전하고, 상담에 대한 반응성이 좋은데 반해서

주변 환경이 열악해서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정환경이 불우해 교육적 지원이 빈약하고 보호자의 불건전한 보호로 인해 평소 품행이 불량하고 또래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아이가,

놀이치료를 진행하면서 상호작용의 질이 좋아지고 품행문제도 눈에 띄게 개선되었을 뿐 아니라, 부가적으로 본래 영리했던 인지능력도 상승되는 걸 보면 무척 뿌듯했는데,

불량 보호자의 불량한 양육이 기승을 부리자, 아이가 상담시간에 늦거나 빠지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문제행동들이 원상복귀 돼 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아이를 망치는 것 같은 보호자에 대한 원망과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과 함께, 상담에 대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이 사례는 좀 극적이면서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가정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보호자의 양육과 훈육의 문제가 심각해서

보호자의  심리적, 행동적 문제가 심각해서

또는 그 외의 어떤 다른 환경적인 이유로 인해서

아동 청소년 내담자가 상담에 잘 반응하고 상담자-내담자 모두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내담자의 문제가 잘 개선되지 않거나,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거나, 개선되다가 악화되거나... 심지어 잘 진행되는데 갑자기 상담이 중단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이럴 땐, 상담에 대한 회의도 들고 화가 나기도 하고, 누군가를 향한 원망도 생기고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괜히 상담자로서 무능해서인가 싶기도 하고요.



제가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을 때, 정신이 확 드는 조언을 듣고 마음이 훅 가벼워졌습니다.


'그게 그 아이의 팔자다'


그 아이가, 그런 부모를 만난 건 그 아이의 팔자 라는 거죠. 얼핏 듣기엔 무심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담자의 '한계'를 직시하게 해주는 말 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처한 현실도 직시하게 해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처한 환경이 다릅니다. 굳이, 100미터 달리기에 비유를 해보자면, 출발선상이 모두 다르다는 거겠죠. 거기에, 입고 있는 옷, 신발 같은 조건은 물론 다리길이, 달리는 능력과 같은 신체 조건도 다르고. 심지어 달려가는 방향도, 달려야 하는 길의 재질이나 경사도 다를 겁니다.


이런 와중에, 나는 왜 완만한 정식 트랙도 아닌 길을 달리는데,  장비도 다 갖추지 못하고 신체 능력도 떨어지지? 왜?

이렇게 생각하면, 나는 조건이 온전히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됩니다.  그럼 세상은 뭔가 불공정한 곳이 되겠죠.


왜 다르게 갖춰졌는지를 고심하는 건 사실, 답이 없는 또는 답을 알아도 무의미한 고민일 겁니다.

그냥 그렇게 생겨 먹은 세상이니까요.


상담자로서, '왜 그 보호자는 그렇게 비호보적일까? 그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냥 그 아이의 조건이 그런 겁니다. 그런 보호자를 만난 게, 그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갖춰진 조건인데, "저 아이는 왜 저런 조건에서 태어났을까?"를 고민하는 건 무의미하겠죠.

그런 조건에서 그 아이는 나름대로 성장을 하고 어른이 돼야 하는 거예요. 상담자가 생각하는 '올바른, 건강한' 트랙으로 옮겨줄 수 없으니.


이렇게 생각하면, 상담자로서의 한계도 분명해집니다. 상담자로서의 부족감, 무력감 아동에 대한 미안함 보호자에 대한 원망 같은 감정은 오히려 상담을 방해할 수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이런 불필요한 감정도 상쇄되고 어떻게든 상담을 어떤 궤도 안으로 진입시켜야 한다는 부담도 날아갑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참고로.. 우리 부모님은 왜 그렇게 고지식한지, 왜 그렇게 보수적인지 따져묻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아, 우리 부모님은 고지식하지. 보수적이지...에서 고민을 시작하면

그런 와중에도 다정했고, 내가 성장하면서 그나마 개방적이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