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화책을 좋아하고, 꽤 많이 읽었다.
처음에는 국내 순정만화부터 시작했고, 여전히 우리나라 순정만화가 제일 좋다. 2000년대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던 국내 순정만화가의 만화는 거의다 읽은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지금도 좋아하는 만화가를 꼽자면
김숙, 황미나, 김은희, 강경옥, 이은혜, 신일숙, 이미라, 유시진, 이빈, 이정애, 원수연, 박희정, 한혜연, 문흥미, 천계영 등을 들 수 있다. - 지금은 딱히 기억이 나질 않으나, 사실 좋아하는 만화가는 이보다 많음. 그리고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김혜린이나 김진도 유명한 만화가임.
이 많은 만화가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가는 단연코, 김은희다.
그리하여, 내 애장품... 김은희 콜렉션!
<왼쪽에서부터, Indian Summer, 소년별곡, Street Generation, M&M, Guyz, 히치하이킹에 관한 찬반양론, 더 칸 & 나비가 없는 세상>
김은희의 만화가 다른 만화가들과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그림체다. 순정만화라고 하기엔
선이 굵었고, 스크린톤을 쓰기보다는 직접 무늬를 그리는 점도 남달랐다.
그리고 김은희는 컬러 일러스트를 매우 잘, 공들여 그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단행본 표지는 색감이 진한 '작품'이고 만화가로서는 흔치 않게, 올 컬러 일러스트집 <Indian Summer, 김은희 컬러 작품집>를 내기도 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의 일러스트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어쩌다 보니 희귀본(?)인 인디안 써머. 자랑스럽게 표지를 스캔해서 올려본다.
<소년별곡>은 김은희 만화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히트한 만화다.
<이미지 출처, 소년별곡 2권 스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년별곡 표지. 수채화의 느낌이 좋다.
소년별곡은 남자같은 여고생의 남학교 체험기 정도로 보면 되는데, 주인공인 우영이가 남자 고등학교에서 아주 잠깐동안 '남자로서' 학창 시절을 누리는 내용으로, 훈훈한 고등학생 지후와 재밌는 학생 랑일이, 그리고 무서운 선배 난우가 등장한다. 총 4권으로 완결됐다. 다행히...
김은희 만화 중에서 그나마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한.... 만화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소년별곡에서부터 스크린톤을 거의 절제하고 펜션만으로 무늬를 넣는 예술가적 풍모가 풀풀 풍기기 시작한다.
소년별곡 4권에는 '귀환선'과 '종이 고등어' 두 편의 단편이 부록으로 수록돼있다.
이 중, '종이 고등어'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편이다. 소년 하라가 오랜만에 찾은 시골집에서, 유년시절 자신과 잘 놀아주었던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내용인데, 고목의 옹이에서 한 움큼 꺼낸 종이 고등어가 손에서 바스러지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이미지 출처, 종이 고등어 스캔>
<Street Generation>도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 총 2권 완결로, 내용은 그리 길지 않다. 'Street Generation, 길위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이혼, 성적지향의 강압적인 집안 분위기, 가정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청소년의 일탈이 감상적이지만 담담하게 표현돼 있다. 주인공 해민이는 부모님이 초등학교 때 이혼한 걸 고등학생일 때 알게 되고 서글퍼하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학교 내 유명한 비행청소년 지인이와 그의 친구들 화타, 학규, 세린이를 만나 진짜 비행(flying)을 하게 된다.
별 뜻 없이, 방황하고 반항하는 것 같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속 깊은 고민을 하고 있던 아이들로, 누군가에게 꼭 소리쳐 하고 싶던 말이 있었던 아이들이다. 가슴속의 담아 뒀던 말을, 누군가에 들려주기 위해 이 아이들은 모였고, 결국 국군의 날 시가 행진 때 패러 글라이딩으로 '비행'하며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미지 출처, Street Generation 2권 P. 105, 106, 107 스캔>
청소년들의 방황과 일탈에는... 이유가 있다. - 반항에는 이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쩝.
<M&M>은 김은희의 대표작이다. 그리고 내가 김은희를 접했던 첫번째 만화이기도 하다. 어릴 땐 제대로 이해도 못했으면서도 M&M을 좋아했는데, 그냥 주인공 마리아가 좋았던 것 같다.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만화는 M&M이고, 만화 주인공은 마리아다.
나는 만화책을 보는 것 뿐만이 아니라, 따라서 그리는 것도 매우 즐겨서(ㅡㅡ:;)
지금도 M&M의 주인공인 마리아를 그린 그림이 몇 점(^.*) 남아 있다.
그 때 끄적인 글은 차마.... 공개할 수 없어서 자체 모자이크 처리.
M&M은 아쉽게도 아직 완결이 안 됐다. 6권까지 나왔는데... 7권이 10년 째 안나오는 것 같다.
일단, 이 만화의 주된 내용은 (음악 천재) 고아 소년 마리아와 잘생기고 유능한 현직 CIA 요원 마고 헤밍웨이의..... 사랑 이야기다.
지중해 가상도시 모크샤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친해지고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이 싹튼다.
마고는 모크샤의 주변국들의 정세가 어지러워서 미국에서 파견된 요원이다. 모크샤 주변국들의 정치적 갈등이 점차 고조되면서 마고와 마리아의 신변에도 변화가 생긴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오해했다가... 풀릴 것 같은 기미가 보이는 시점에서 6권은 끝나버렸다. 흑.
그리하여 내... 간절한 소원 중.. 하나... M&M 완결을 보는 것.
M&M엔 다양한 록 음악이 BGM으로 등장한다. 만화'책'에 무슨 BGM이냐 할 수도 있지만, 주인공 마리아가 클럽 가수라서, 마리아가 직접 부르는 노래 가사가 실리기도 하고, 뮤직 비디오처럼 대사는 없지만 노래 가사와 함께 그림만으로 내용이 진행되기도 한다. - 사실, 이런 식의 연출은 김은희 만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암튼, M&M을 보면서 호기심에 자연스럽게 여러 록 음악을 들어보게 됐다. 그 중, L.A Guns 같은 마니악한 그룹을 알게 된 건... 이 만화를 통해서는데, 아마, 제목이 'She's Malaria' 였던 것 같다. 너무 궁금해서 카세트 테이프까지 사서 들어봤으나, 안타깝게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이 만화에 소개됐던 음악 중에서 제일 좋았던 건, 'As time goes by'였다. 이 음악은 여러 가수가 리메이크 한 명곡이다. 가사도 좋다.
<GUYZ>는 내가 보유한 김은희 콜렉션 중에서 가장 희귀본이다. 출판사도 잘 모르는 '동화세계'
초초 휘귀본이니까, 소장하고 있다는 티 내기 위한 사진!!
이 만화도 고등학교 이야기다. '때비'라는 별명의 꼬장꼬장한 젊은 남자 교사가 인상적인 만화인데, 주인공은 학생들이다. 때비라는 별명은 본명이 '시우(時 때시, 雨 비우)이기 때문이라는 게 뇌리에 강렬히 남았다. - 내용을 다시 쓸라니 기억이 갸물갸물 한데, 전 국가대표 체조였다가 부상으로 평범한 여고생이 된 엄태여가 음악하는 해찬이, 산다라와 얽혀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는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다.
GUYZ는 총 세권이고, 각 권마다 단편들이 수록돼 있기도 하다. 이것도 완전 좋음. 헤헤.
1권에 수록된 '앞으로의 긴 여백'은, 단명한 어린이 그림 천재에 대한 이야기로, 관찰하는 아이의 시점으로 그려져있다. 짧지만 내용은 아주 강렬해서, 한 번 보면 여운이 오래 간다.
2권에는 비행기 하이재킹과 보석 도둑에 대한 'Hard Rock'이 수록돼 있다. 나름 반전도 있다.
3권에는 'Some Like It Hot', '날개 달아주기', '말하는 용' 세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다.
'Some Like It Hot' 은 마피아 가문에서 태어나, 원래는 남자이지만 가업을 피하기 바란 엄마에 의해 여자로 길러진 '라우라'가, 집안의 압력으로 원수집안의 바람둥이 한량 로드리고 로드리게스와 결혼하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파격적이고 특이한 내용의 단편만화다.
덧붙여, GUYZ에 얽힌 개인적인 일화가 있다.1998년 SICAF 2회 때(당시 고 2) 김은희 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홀홀단신 삼성동 코엑스까지 찾아가 친필싸인을 받았었다. 이 때, 당시로서도 희귀본이었던 GUYZ에 싸인을 해주시던 김은희 님이... 내심 흐믓한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ㅎㅎㅎ
<히치하이킹에 관한 贊反兩論(찬반양론)>은 총 세 권, 완결됐다. 이 만화는 '음악' 만화다. 본래 김은희 만화에는 다양한 음악이 소개되고, 음악하는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 대부분의 만화 후기 같은 걸 보면, 김은희가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잘 나와있다.
그 중에서도 히치하이킹에 관한 찬반양론은, 본격 음악 만화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주인공이고, 멤버 각자가 음악 천재 '해무'(여자)를 각자 다른 의미로 좋아하게 되는 내용이다.
이 만화에 대해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던 건, 중간중간 아마도 문화생이 그렸을법한 컷이 종종 눈에 띈다는 것인데...만화를 읽어 가면서 집중력을 흐리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히치하이킹에 관한 찬반양론 3권 뒤표지 그림 스캔>
<더 칸>은 그나마 근래에 연재했던 작품인데, 4권까지 나오다가 연재 중단.
고려시대 충열왕 때, 왕가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로... 김은희 만화로는 드문.. 시대물이다.
화려한 의상과 배경이 매우 돋보이는 만화인데... 연재 중단.
덕분에 고려사도 훑어보게 되었는데... 흑. 초반 내용을 보면, 아주아주 장대한 이야기가 같은데... 그냥 계속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나비가 없는 세상>은 한 권이다. 이전까지의 만화 곳곳, 후기에 자주 등장한 김은희가 키우는 고양이 세 마리에 대한 만화이다.
세 마리 중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페르캉. 개구장이 남아. 이 만화를 그릴 때는 일곱 살이였나보다. 그리고 페르캉의 누나 추새와 엄마 신디.
이 책의 여섯 번째 이야기의 제목은 '페르캉의 투병기'로, 씩씩한 페르캉이 큰 개에게 물려 한 쪽 눈을 잃게 되는 내용이 나온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아직도 고양이를 노골적으로 싫어하고, 적극적으로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페르캉을 치료한 수의사에 의하면, 6Kg가 넘는 고양이는 웬만한 개와 싸우면 거의 이기는데, 이렇게까지 심하게 물린 걸 보면 사람이 일부러 괴롭힌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겪은 후로 긴 막대기만 보면 페르캉이 벌벌 떨며 도망간다는 내용이 나온다. 흠...
이 내용을 처음 봤을 땐 진짜 놀랬고, 다시볼 때마다 마음이 참 아프다.
김은희의 블로그를 보면 http://blog.naver.com/johnsilver9/30080691232 한쪽 눈이 상한 고양이 페르캉의 사진이 나온다. 사진을 처음 봤을 때 가슴이 꿍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김은희의 블로그는 '페르캉이 하늘로 떠났습니다.'는 포스팅(2010년 12월 19일)을 끝으로, 더이상의 블로그 활동은 없다.
이것 또한 슬픈.. 일이다.
'나비가 없는 세상'에도 특별단편 '꿈꾸는 처녀'가 수록돼있다. 미래세계에서 꿈을 공유해서 심리치료를 한다는, 소재가 상당히 독특한 내용이다.
그러고보니, 김은희의 단편은 소재가 참 독특하고 다양하다. 그것또한 매력적.
포스팅 하려고 책을 들춰보고 사진을 찍고하면서 내용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금봐도, 이렇게 봐도 좋다.
덧.
김은희의 블로그는 2010년까지는 뜨문뜨문 활동이 있었던 것 같다. http://blog.naver.com/johnsilver9
(나는 워낙 늦게 알고 방문하게 됐지만.) 그래도 화려한 일러스트가 잔뜩 있다. 김은희의 화려한 그림이 궁금하다면, 다른 블로그 말고, 김은희 블로그를 직접 방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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