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빨간머리 앤이 TV에서 방송될 때는
그다지 재미가 없다고 느껴서, 안 봤었다.
아마도, 앤이 말이 너무 많고, 마릴라 아줌마가 무뚝뚝한 게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왠지 매튜 아저씨만 앤을 좋아하고, 마릴라 아줌마는 앤을 구박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 다시 보니
어릴 때, 빨간머리 앤에 대해서 심각한 오해를 많이도 하고 있었던 걸 알게됐다.
그리고, 어릴 때나.. 중고등학생이었다면 몰랐을 사람들 간의 관계가 잘 보였다.
우선 어릴 땐, 앤이 그저 순하고 착한 아이인 줄 알았다.
그저 9살이 되어서야 가정집으로 입양된
그저 상상력이 굉장히 풍부하고 말을 잘하는 아이라고만 기억했다.
헉, 근데
앤은 고집이 세고, 성질이 불같은 아이다!
언어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머리가 굉장히 좋은 아이인 건 맞는데,
상상하는 내용이, 심하게 소망충족적 공상이라.. 재밌고 특이한데, 지극히 안쓰럽다.
초록색 지붕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친구를 사귀고, 학교에 다니면서
소망 충족적인 공상은, 점차 뛰어난 상상력으로 친구들을 사로잡고,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진화한다.
아이의 성장은, 애정과 실제적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짐을
만화니까, 너무 쉽고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리고, 고아원에 가기 전까지도 10살도 안 된 나이에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이기도 했고, 가난한 집 더부살이라고 천덕꾸러기이기도 해서
'사회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아이였던 것 같다.
언변이 좋긴 하지만,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떠들 뿐인 아이였다.
이런 점이 오히려 적막하고 딱닥했던 매튜와 마릴라의 초록지붕집엔 활력이 되었고.
정말, 앤이 초록색 지붕 집에 왔을 초반의 장면들을 보면
앤은... 라디오 같다.
혼자 떠들고, 어른 둘이 조용히 들으면서 가끔 키득거리고, 잔소리같은 피드백으로 몇 마디 하는 게 고작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대화가 늘어서, 이들이 대화를 나눈다는 게 그저 자연스럽게 보인다.
대화가 늘었구나... 라고 느꼈을 때의 감동은 소박하지만 잔잔하게 마음을 울렸다.
마릴라가 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건 맞긴 한데
앤에게 기본적인 예절이 몸에 배어 있지 않으니, 단지 마릴라는 '교육'을 하는 것 뿐이다.
그다지 과하지도 않고.
교육과 훈육을 위한 기준도 명확하고, 체벌도 하지 않고, 아주 단호하다.
다소 경직되어 보이긴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적당한 수준인 것 같고.
마릴라는 앤에겐 더할나위 없이 괜찮은 어머니 역할을 해준다.
이번에 앤을 보면서, 마릴라가 정말 좋은 사람이고, 본받을 게 많은 사람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됐다.
매튜는, 수줍음이 병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 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너는 그냥 너라서 좋았다'는 말에
내가 감사하고... 감동을 받았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아보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또 새삼 느낀.
명작 면화다.
이번에 애니매이션을 본 이래로, 빨간머리 앤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해봤는데
일단, DVD가 국내에 출시됐다!
![]() | 저자 다카하타 이사오 출판사 매니아엔터테인먼트 |
하지만, 지금은 품절이라는 게 함정...
그리고 원작 소설, Anne of Green Gables는 저작권이 풀려서 free E-book을 보는 게 가능하다.
구텐버그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면 ibook에서 볼 수 있는 파일을 제공받을 수 있고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원작 소설이 워낙 인기가 좋아서, Lucy Maud Montgomery는 '초록 지붕집의 앤'이후에, '에이본리의 앤', '섬의 앤', '꿈의 집의 앤'과 같은 후속 작품을 냈다. - 이 후속작들오 판권이 다 풀렸다!
초록 지붕집의 앤은 은행에 맡긴 돈이 은행의 파산으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후, 평소 협심증을 앓던 매튜가 죽고, 앤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마릴라와 둘이서 살게 되는 내용으로 끝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극적으로 길버트와 화해를 하는데,
이어진 후속작에서 길버트와 결혼하는 내용까지 나온다고 한다.
삭막한 일상에 단비이 촉촉하고 따듯한 이야기.
힐링이 필요한 분들에게 강추!
ps.만화를 보고 그렇게 펑펑 울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그래서 1, 2회 볼 때는 꾸역꾸역 참았는데
매튜가 죽을 때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진짜 오랜만에 꺽꺽 소리내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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