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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 검사에서 (H)의 의미

임상심리전문가 최효주 2017. 3. 5. 23:08

로샤 검사에서 인간 반응은 총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H  - 전체 인간

 

Hd - 부분 인간

 

(H) - 가상의 또는 현실적이지 않은 인간

 

(Hd) - 가상의 또는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 인간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다"고 하면, H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상체"라고 하면, Hd

 

"천사 둘이 마주 보고 있다."고 하면, (H)

 

"천사 둘이 마주보고 있는데, 상체만 보인다."라고 하면 (Hd) 가 됩니다.

 

 

사실, H/Hd/(H)/(Hd) 를 구분해서 코딩하는 건, 결정인이나 다른 내용들을 코딩하는 것에 비하면 비교적 쉽습니다.

 

다만, 조금 헛갈린다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 '뽀로로' 또는 '둘리' 같은 동물 캐릭터가 (H) 와 (A) 중 어떤 게 더 합당할까 정도이고,

 

예수님이 H인지, (H)인지 정도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의견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며,

 

최근에 봤던, 고민이 됐던 내용은 '허수아비'를 과연 무엇으로 코딩하는 게 가장 합당할까, 정도 입니다.

 

 

* 제가 오늘 정리하려는 내용은, (H)의 코딩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코딩이 가장 합당한지에 대해서는 -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쓰도록 합니다.

 

 

로샤 검사 결과를 해석할 때, H/Hd/(H)/(Hd)는 다른 내용에 비해, 수검자의 자기상(self image)과 대인관계를 이해할 때 대단히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수검자의 전체 로샤 프로토콜에서 인간 반응이 몇 개나 나왔는지, 그 중 순수 전체 인간H 반응은 얼마나 되는지가 대인관계의 질을 분석할 때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당연히 가장 좋은 반응은 (순수) 전체 인간 반응인 H 입니다.

 

 

 

그런데, 로샤 공부를 할수록 H가 제일 좋은 반응이라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됐는데, Hd나 (H)가 왜 상대적으로 덜 양호한 반응인지는 충분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구조요약 하단부 대인관계 영역에 H vs Hd + (H) + (Hd)의 비율을 보는 부분이 따로 있을 정도로 H가 중요하다는데, 나머지가 상대적으로 왜 덜 양호하거나 나쁜 반응인지에 대할 설명은, 제게는 충분하지 않더라구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부분적으로 또는 가상의 인물로 보거나 동일시 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제가 이해하고 있던 내용인데

 

뭐랄까 확 와닿지 않는 설명이랄까요. 뭔가 알듯말듯한.

 

 

 

그러다 얼마전에, 로샤 워크샵 도중 이 부분을 설명하다가 유레카가 찾아왔습니다.

 

"누군가 나를 괄호를 씌워서 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남이 씌운 괄호를 쓰고 있는 나"

 

뭔가 번개를 맞은 느낌이랄까요...

 

아,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는 게 이런 의미지요.

 

자기 만의 기준으로 내게 틀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대로 날 평가하고 판단하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날 비난하고 재단하려 들고

 

이렇게 생각하자 뭔가 몹씨도 불쾌한 기분이 확 끼쳤는데, 그 이유는 내가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로부터 이렇게 대해져왔기 때문이었고

 

그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게 매번 불쾌한 건, 그 사람이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하지 않고 '그 분이 바라는 나'로 대하기 때문이라는, 일종의 통찰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괄호를 씌워서 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남이 씌운 괄호를 쓰고 있는 나"

 

 

H/Hd/(H)/(Hd)의 질적 해석 맥락에서 이 질문을 들은 분들은, 대부분 이 질문의 의도를 쉽게 간파하셨고

 

한결같이 '불쾌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자, 그럼,

 

"나는 누군가를 대할 때 괄호를 씌워서 보진 않나요?"

 

그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우리 각자의 로샤 프로토콜에 있을 수도 있겠죠?

 

 

로샤 반응에서 (H)가 많다는 건, 아마도 그런 뜻이겠죠.

 

다른 사람을 볼 때, 있는 그대로의 H가 아니라 괄호를 씌운 (H)를 본다는

 

아마도, 어쩌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H로서 대해지지 않고 줄곧 (H)로 대해져 왔다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본다는 건

대인관계를 진실하고 편안하게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인입니다.

 

만약, 상대방을 어떤 기준 또는 어떤 틀 안에서만 대하고 평가하려 하면,

두 사람 모두 서로가 못마땅하고 불편하며,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겠죠.

 

 

 

 

로샤 검사 자료를 보면, 점점 H보다는 Hd/(H)/(Hd)의 비중이 더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시대 변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쩐지 씁쓸하고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