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 증상에 대해서는 그래도 쫌 알고 있다. 내담자와 수검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른다.
가끔, '니가 나에 대해 뭘 알아?' 하는 늬앙스의 반응(말, 표정, 태도)을 접할 때가 있는데, 그렇다. 나는 사실, 진짜 내 앞에 있는 사람에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하는 말과 행동과 태도를 맥락에 맞춰 고려해보면, 그 사람의 증상은 알아볼 수 있다. 나는 마음에 어떤 병이 어떤 원리로 발생하는지, 이 병리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는 안다. 내가 아는 건, 그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그 사람이 말과 행동과 태도로 보이는 그 증상이 뭔지는 좀 안다.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내가 느끼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어요?
그 사람 자체에 대해 잘 알아야만, 그 사람에게 있는 그 (고통이 포함된) 증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우울증 증상이 있는 분들 중에는, 일상에서 문제가되는 행동이나 생각, 감정을 느끼는 게 증상인지, 자신이 원래 그런 건지 구분하는 것 조차 하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그 증상이 불편하고, 자신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는 경우에도. 그 문제적인 생각, 감정, 행동이 '증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그런 문제적인 생각, 감정, 행동은 그 사람이 아니라 '증상'의 일부라는 걸 알고는 있다.
세상과 자신, 다른 사람의 문제점'만' 보고 좋은 건 못 보는 건, 증상이다.
단점을 장점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건 성격이다. 이건 증상이 아니다.
증상도 성격도 그 사람 자체는 아니다.
증상은 아픈 거고, 성격은 그 사람에게 있는 일부이지 그 사람 자체는 아니다.
사람의 행동과 말, 태도, 생각, 감정 등등에서 성격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성격의 영향이 큰 건 맞지만, 성격이 곧 그 사람은 아니다. 성격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성격보다 더 큰 유기체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
상담을 하는 사람도 검사를 하는 사람도, 내담자와 수검자를 잘 모른다.
그런데, 내담자와 수검자를 잘 모르는 게, 우리가 '마음'을 다루는 일을 할 때 문제가 되나?
상담자와 검사자는, 그래도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마음"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많다. 그리고 이 마음이, 말과 행동, 태도, 어떤 결정으로 관찰이 된다는 걸 알는 있다. 그래서 내담자와 수검자의 말과 행동, 태도, 결정을 맥락에 따라 마음을 짐작해 볼 수는 있다.
누군가와 누군가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누군가에 대해 잘 안 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 누군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채로,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나는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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