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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심리검사 결과를 통합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먼저 전제해야 할 것들

심리평가를 하다 보면, 여러 검사를 실시했는데 결과가 꼭 한 방향으로만 정렬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 검사 결과가 왜 제각각이지?”
“그럼 뭐가 진짜지?”

이 혼란은 검사 해석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심리검사 결과를 바라보는 기본 전제가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검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전제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1. 사람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입체적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닙니다.
단일한 방향, 단일한 성질로 설명될 수 있는 대상도 아닙니다.

이 전제가 충분히 내재화되어 있지 않으면,
각기 다른 심리검사에서 서로 다른 양상이 나타날 때 혼란이 커집니다.

"뭐가 진짜지?"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근데, 여러 분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자기 자신이 완전히 자랑스럽기만 하거나 전적으로 창피하게 느껴집니까? 때로는 마음에 들고 때로는 되게 싫고 그렇잖아요. 뭐가 진짜 인가요?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만? 그러면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은 가짜인가요?

사람의 마음은 원래 여러 면을 동시에 가진다는 전제가 분명하다면, 검사 결과는 이렇게 이해하고 통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아, 이 사람의 마음에는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구나.”

검사 결과가 엇갈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엇갈림 자체가 마음의 복잡성과 통합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정보가 됩니다. 혼란은 수검자의 것입니다. 우리는 수검자의 혼란에 공감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혼란스러워질 필요는 없습니다.


2. 심리검사가 측정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다

심리검사는 사람 자체를 측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그 사람의 심리 상태와 심리적 기능, 즉 ‘마음’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 전제를 놓치면, 검사 결과를 근거로 이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지만 이 표현은 매우 위험합니다.
마음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고, 그 사람을 대표하지도 않습니다. 

심리검사는 어디까지나 도구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마음의 특정 측면을 포착하는 절차입니다.
그래서 검사 결과를 해석하고 문장으로 옮길 때에는, 가능하면 이렇게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 사람의 마음에는 이런 면이 있구나.”
“이 시점의 심리 상태에서는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는구나.”

이 차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 보고서의 결을 완전히 바꿉니다. 나 라는 사람이, 나의 마음이 한 문장으로, 단편적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처럼, 그 누구의 마음도 한 단어/한 문장으로 기술되지는 않을 겁니다.


3. ‘마음’은 몸 안에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마음이 몸과 분리된 추상적인 무엇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마음이 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요.

하지만 마음은 몸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몸의 규칙을 그대로 따릅니다.

마음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놀랍지 않게도 답은 입니다.

허리가 아프면 기분이 나빠질 수 있지만,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허리가 자동으로 아파지지는 않습니다. 몸과 마음의 관계는 [몸 > 마음] 입니다.

몸에는 수많은 장기가 있고,
어떤 장기는 아주 튼튼하고, 어떤 장기는 유독 쉽게 고장이 납니다.
뇌도 예외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안정적인 장기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나 환경 변화에 취약한 장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 관점은, 심리검사 결과를 의지·성격·도덕성의 문제로 단순화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4. 마음은 ‘파티션’이 가능하다

마음은 전체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능별로, 영역별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위/아래, 몸통/사지 처럼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고 신경계, 순환계, 소화계 같은 기능별로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마음도 구분하고 분류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가장 흔히 사용하는 구분 기준은 기능 중심의 분류입니다.
예를 들면,

  • 지각과 사고
  • 정서
  • 성격
  • 대인관계

와 같은 영역들입니다.

각 심리검사는 이 중 일부 영역을 상대적으로 더 민감하게 포착합니다.
따라서 검사마다 강조점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5. 그 어떤 검사도 마음 전체를 측정하지는 못한다

검사 하나로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검사 하나가 보여주는 것은 언제나 아주 국지적인 단면입니다.

검사를 여러 개 실시한다고 해서
마음 전체를 빠짐없이 측정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여러 검사를 사용할수록
마음을 더 다층적으로, 더 입체적으로 조망하게 될 가능성이 커질 뿐입니다.

그래서 통합 해석이 중요합니다.
검사 결과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비추는 면을 겹쳐 보면서 하나의 구조를 그려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6. 성격과 현재의 마음 상태는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런 흐름이 됩니다.

원래 이런 성격 특성(Personality, 예: TCI)을 가진 사람이
특정한 경험과 환경을 거치면서
지금은 이런 심리 상태(MMPI 임상척도, 재구성 임상척도, 내용척도 등)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이 구분이 명확할수록,
성격을 병리화하지 않고,
현재의 어려움을 과잉 해석하지도 않게 됩니다.


참고할 만한 전문 자료(레퍼런스)

  • Groth-Marnat, G., & Wright, A. J. (2016).
    Handbook of Psychological Assessment (6th ed.). Wiley.
    → 다검사 접근, 통합적 해석, 검사 결과의 한계에 대한 고전적이면서도 여전히 유효한 기준서
  • Meyer, G. J., Finn, S. E., et al. (2001).
    Psychological testing and psychological assessment: A review of evidence and issues.
    American Psychologist, 56(2), 128–165.
    → “검사 하나로 사람을 규정할 수 없다”는 논지를 가장 명확하게 정리한 논문 중 하나
  • Millon, T., Grossman, S., & Meagher, S. (2004).
    Personality Disorders in Modern Life. Wiley.
    → 성격 특성과 현재 상태를 구분해서 이해하는 틀을 제공
  • Siegel, D. J. (2012).
    The Developing Mind (2nd ed.). Guilford Press.
    → 마음–뇌–몸의 통합적 관점에 대한 신경과학적 기반
  •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22).
    DSM-5-TR.
    → 상태(state)와 특성(trait)을 구분하는 현대 정신병리의 공식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