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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의 기술: 내용보다 맥락 with 클로드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믿어야지"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한재호는 이 말을 자주 한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믿어야지."

조직 범죄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의 처세훈이다. 사람은 언제든 변하고 배신하지만, 상황이 만드는 논리는 예측 가능하다는 것.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재호는 결국 사람을 믿었기 때문에 배신당한다. 영화는 그 격언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대사는 느와르 영화의 명대사이기도 하지만, 심리학적으로도 꽤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우리가 '사람'을 먼저 보는 이유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상황보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 Lee Ross는 1977년 이 현상을 '기본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명명했다.

기본 귀인 오류란,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사회적·환경적 상황 요인을 과소평가하고 성격이나 기질과 같은 내적 특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다. 쉽게 말해, 누군가가 늦으면 "게으른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지,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라고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Ross는 이 경향이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치료 선택에도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면담자도 예외가 아니다. 내담자가 어떤 행동을 했다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성격으로 설명하려는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 말이 어떤 상황 속에서 나온 것인가?" 이렇게 생각해야, 맥락에 따라 그 행동과 말의 의미가 이해된다.


말이 아니라 맥락을 들어라

임상 면담, 심리검사 면담, 수검자 또는 보호자와의 대화에서 우리가 듣는 것은 단순한 '사실의 보고'가 아니다. 그 말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특정한 목적과 심리적 동기를 가진 사람이 만들어낸 서술이다.

법정심리학과 진술분석(Statement Validity Analysis) 분야에는 CBCA(Criteria-Based Content Analysis)라는 도구가 있다. CBCA의 핵심 전제인 Undeutsch 가설에 따르면, 실제로 경험한 사건에 대한 진술은 꾸며낸 진술에 비해 더 많은 구체적인 세부 정보를 포함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차이가 진술 신뢰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이 원리를 면담 장면에 적용해보자. 누군가가 어떤 상황을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이 어느 부분에서 구체적이고 어느 부분에서 모호한지를 관찰하면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임상심리학회 전문가 특강에서 진술 조사 전문가가 공유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이 설명한 방식은 이렇다. 그림에 비유하자면, 사람들은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은 정밀묘사를 하듯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감추고 싶은 부분(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수채화 배경처럼 흐릿하고 피상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말하는 부분, 흐릿하게 말하는 부분

면담에서 이것은 두 가지 신호로 나타난다.

① 자발적이고 상세하게 말하는 부분 "이 부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심리가 작동하는 곳이다. 시간 순서, 구체적인 장소, 특정 발언, 감정의 묘사 등이 풍부하게 등장한다면, 그 사람이 이 내용을 중요하게 여기거나 상대방(즉 면담자)에게 특정 인상을 심어주려는 동기가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② 질문을 받아야만, 그것도 모호하게 대답하는 부분 스스로 꺼내지 않고, 물어봐도 피상적이거나 얼버무리는 영역이 있다면 그 부분이 상대방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지점일 가능성이 있다.

이 패턴의 심리학적 기반은 잘 확립되어 있다. 자기봉사적 편향(Self-serving Bias)이 그것이다. 자기봉사적 편향에는 두 가지 동기가 작동한다. 하나는 자아가치를 유지하려는 자기고양(self-enhancement)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에게 원하는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자기표현(self-presentation)이다. 사람들은 성공은 자신의 내적 요인으로, 실패나 부정적 결과는 외부 요인으로 귀인하여 타인에게 유리한 인상을 남기려 한다.

이 편향은 단순히 "좋게 보이고 싶다"는 의식적인 욕구만이 아니다. 상당 부분은 우리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거짓말이 아니다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이 있다. 앞서 설명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서술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기만(self-deception)과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로 구분한다. 자기기만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왜곡된 반응을 진정으로 믿는 경우로, 스스로도 편향을 인식하지 못한다. 반면 인상 관리는 더 의식적인 편향의 형태로, 사람들이 자신을 더 좋게 보이게 하려는 인상을 의도적으로 조율하는 경우다.

즉,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을 흐릿하게 서술할 때, 그것은 거짓말이 아닐 수 있다. 기억 속에서 그 부분이 실제로 덜 선명하게 저장되었을 수도 있고, '굳이 자세히 말할 필요 없다'는 무의식적 판단이 작동했을 수도 있다. 자신의 관점에서 그것은 진실의 서술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면담자는 그 사람이 '거짓말쟁이냐 아니냐'를 판별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서술의 패턴을 관찰해야 한다.


구체화 질문의 역할

여기서 실용적인 기술이 하나 등장한다. 어떤 사람이 특정 부분을 모호하게 말한다고 해서 섣불리 "이 사람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단순히 말하는 능력이나 기억 인출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구체화/명료화 질문(elaboration/clarification questions)이 유용하다.

"그때 무슨 말들을 주고 받았어요?"

"그 일이 있기 직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디에 계셨어요?"

말하는 능력이나 기억력의 문제가 이유였다면, 이런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떠올려 채워 넣는다. 반면,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말했던 것이라면, 구체성을 높이는 질문에서도 여전히 피상적이거나 얼버무리는 대답이 반복된다.

진실한 진술과 허위 진술 사이의 주요 차이 중 하나는 세부 정보의 구체성 수준에 있으며, 실제 경험에 기반한 서술일수록 구체적인 맥락 정보, 시공간적 세부사항, 예상치 못한 세부 정보 등이 더 풍부하게 나타난다.


면담자의 포지션: 다시 '맥락'으로

결국 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다.

면담에서 내담자, 수검자, 보호자가 하는 말을 들을 때, 먼저 내용을 충분히 파악해라. 그리고 그렇게 파악한 정보를 한 번 검토하자.

"지금 이런 상황인데, 이 사람이 그 내용을 이런 방식으로 이 말을 하고 있네?"

내용(content)과 맥락(context)을 동시에 볼 수 있을 때, 면담은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를 넘어 상황을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

영화 속 한재호의 조언처럼.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말이 아니라 맥락을.


참고문헌

  • Ross, L. (1977). The intuitive psychologist and his shortcomings: Distortions in the attribution process.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10, 173–220.
  • Steller, M., & Köhnken, G. (1989). Statement analysis: Credibility assessment of children's testimonies in sexual abuse cases. In D. C. Raskin (Ed.), Psychological Methods in Criminal Investigation and Evidence. Springer.
  • Amado, B. G., Arce, R., Fariña, F., & Vilarino, M. (2016). Criteria-Based Content Analysis (CBCA) reality criteria in adults: A meta-analytic review. International Journal of Clinical and Health Psychology.
  • Sedikides, C., Campbell, W. K., Reeder, G. D., & Elliot, A. J. (1998). The self-serving bias in relational contex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4(2), 378–386.
  • Paulhus, D. L. (1984). Two-component models of socially desirable respond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46(3), 598–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