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잡아 봐라~’와 쫀득한 관계
‘나 잡아 봐라~’ 놀이는, 잡힐 듯 잡히지 않다가, 결국은 잡혀서 둘 모두 깔깔대고 웃는. 참 시시하고 뻔한 놀이입니다. 그런데 연인이라면 한 번쯤은 해보게 되는, 해보고 싶은 놀이지요.
연애 경험이 없다면, 꼭 해보고 싶은 놀이이기도 하고요.
‘나 잡아 봐라~’에서 핵심은, ‘잡힐 듯 말듯 하다가 결국은 잡히는 것’입니다.
앞서가는 사람과 뒤쫓는 사람이 적당히 달리는 속도를 조절해서 둘 간의 거리를 서서히 좁혀가는 그 쫀쫀한 긴장감이 재밌고,
결국은 잡혀서 둘이 껴안고 깔깔거리게 되지요.
근데, 여기서 만약,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전력질주를 하게 되면
잡혀도 안 잡혀도 낭패입니다.
앞서는 사람이 전력질주를 하다 잡히면 (진 것 같은 기분에) 찝찝하고 안 잡히면 서운하겠죠.
뒤쫓는 사람이 전력질주를 하다 잡으면, 상황이 너무 빨리 종료돼, 쫀득한 긴장감이 아니라 팽팽한 긴장감만 넘치다 재미는 없겠고, 못 잡으면 서로 짜증나겠죠.
이런 건 놀이가 아니에요. 하는 사람이 두 명인데 둘 다 재미가 없잖아요.
‘나 잡아 봐라~’는 가까이 있지 않아도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강화하는 놀이입니다. 그래서 이런, 뻔하고 시시한 ‘나 잡아 봐라~’가 연인 관계에서는 정말 중요한 놀이입니다. 그야말로, 연인이라면 시대불문, 만국공통의 놀이입니다.
서로 사귀는 사이에서, ‘나 잡아 봐라’를 하게 되는 때가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이럴 땐, 두 사람 모두 ‘잡힐 듯 말듯’ 유치하지만 재미나게 이 놀이를 하게 됩니다. 그 때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 정도 쫀쫀해지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 쏠로 생활이 길어, 이 놀이를 하는 게 로망이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참고로, ‘나 잡아 봐라’는 발달적 관점에서 ‘대상영속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놀이입니다. ‘나 잡아 봐라’는 대상영속성과 관련된 놀이 중, 상당히 발전된 형태입니다. 비슷한 놀이로는 ‘숨기 놀이’가 있고, ‘숨바꼭질’도 그 일종입니다. 또는 물건을 감추는 형태로도 변형되기도 하고요. ‘대상영속성’과 관련된 놀이 중 가장 원시적인 놀이는 ‘까꿍 놀이’입니다.
놀이치료 관련 수업이나 워크샵을 들으면 '까꿍놀이'와 이 놀이의 변형된 형태의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 배웁니다.
실제로 놀이치료를 진행하다 보면, 정말 놀랍게도, 거의 모든 아동이 이러한 종류의 놀이를 시도합니다.
아동은 치료자가 (암묵적으로) 술래가 되는 잡기 놀이나, 숨기놀이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모래 속에 장난감을 감춰두고 찾는 놀이를 한 시간 내내 또는 몇 회기에 걸쳐 반복하기도 하고 - 또는 이 장난감을 치료자에게 찾도록 하기도 하죠.
아동이 이런 류의 놀이를 시작하면, 치료자는 아동과 쫀쫀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되는 구나 싶은 감이 옵니다. (그런 감이 오지 않더라도, 아, 시작됐구나 알게 되긴 합니다.)
그리고 아동은 이런 류의 놀이를, 형태를 다양하게 변형해가면서 꽤 오래 합니다. 정말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이 놀이를 즐기는 아동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안 하나 싶다가도,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류의 놀이를 하면 할수록, 아동과 더 친밀해짐을 느낍니다. 치료자도 '이렇게 관계의 질이 좋아지는 구나'를 체험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이건 비단 저만 느꼈던 것이 아니라, 놀이치료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정말, 이런 '까꿍 놀이' 류의 놀이의 중요성에 감탄할 수 밖에 없지요.
이런 점에서, 나의 연인이 느닷없이 (유치하게도!) '나 잡아 봐라~'를 한다거나 갑자기 숨어서 찾아 주기를 기다린다거나 할 때, 호응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면 주저말고 같이 놀아 보심이... 어떨지..^^
그리고, 어떤 어린 아이가 숨기놀이나 잡기놀이를 시도한다면 잡을 듯 말듯 재미나게 호응해 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특히, 본인의 자녀가 잡기놀이, 숨기놀이, 숨기기 놀이를 시도한다면, 약간은 과장된 말투와 행동으로 아이와 놀아주어야 합니다! 설사, 이 아이가 질리도록 이 놀이를 시도한다고 해도.
이 놀이를 잘 하는 아이가, 전반적으로 질 좋은 대인관계를 맺게될 가능성이 높고, 나아가 연애관계에서 밀당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게 될테니까요.
“짝” 프로그램을 스치듯 보다가, 우연히 해변에서 ‘나 잡아 봐라~’를 하는 커플을 봤습니다.
여자가 수줍게 뛰기 시작했고, 남자가 뒤 쫓는 상황이었는데,
여자가 전력질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남자가 당황해서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여자를 맹렬이 쫓아갔습니다.
아...! 이런 커플이 실제로 있을 줄이야.... 하는 웃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언젠가 이 내용을 포스팅 해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오늘에야 쓰게 됐습니다. 아, 후련해.